컴퓨터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주변 어느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그 어떤 충고의 말이나 꾸중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밥은 굶어도 괜찮지만 일정 시간 컴퓨터 앞에서 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 정도가 도를 넘어 그것이 만든 가상세계로 현실을 대체해 버리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히는 사람들을 일본어로 '오타쿠'라고 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은 뒤로 한 채 만화, 비디오게임, 아이돌 스타, 인형 모으기, TV보기 등과 같은 특정 생활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몰두한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프랑스 기자 에티엔 바랄이 쓴 '오타쿠-가상세계의 아이들'은 컴퓨터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부모들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저자는 '공부하라, 일하라, 소비하라'란 절대명령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표면적인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경쟁에 직면해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생산사회에 들어가는 대신 가상의 세계나 유년의 놀이문화에 남기를 택한다고 분석한다. 심리적 퇴화 또는 자폐 증상에 가까운 오타쿠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 빚어낸 희생자이자 이탈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본정신과 억압적인 학교 교육에 학대당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생존방식이라는 것이다. '현실보다 상상의 세계가 더 좋다. 나를 인정해 주지도 않는 사회의 규약들은 지켜서 무엇 하나.'라는 한 오타쿠의 외침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야 한다.'라는 일본 속담을 상기시키며 '튀어나온 못'의 고뇌와 고통은 외면한 채 그냥 돌출부를 두드려 박아 넣으려는 피상적인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이제 책임 있는 지식인들이 나서서 차근차근 설명하며 아이들을 바깥 세계로 나오게 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디지털 세계가 새롭게 솟아오른 빙산이라면 그 빙산을 바치고 있는 밑둥치는 아날로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아날로그적인 교양이 전제될 때, 디지털 영역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고전작품을 읽으며 인문적 교양을 쌓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컴퓨터 때문에 무조건 화를 내거나, 충분한 설명 없이 컴퓨터를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는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그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억압과 맹목적인 강요로 튀어나온 못을 임시방편으로 박아 넣으려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말문을 닫고 자기만의 폐쇄된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른이 진실한 마음으로 먼저 가슴을 열어야 아이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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