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음 벼랑끝 15년 불법체류 中동포 이종목 할아버지

"제발 숨이라도 쉬게 좀 도와주세요"

▲ 위독한 상태에서 대구 북구 강북보건지소를 찾은 이종목 할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위독한 상태에서 대구 북구 강북보건지소를 찾은 이종목 할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7일 오후 대구 북구 강북보건지소. 이종목(78) 할아버지가 "제발 숨 좀 쉴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호소했다. 이 씨는 심한 천식으로 숨쉬기가 어려웠고,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의료보호 대상자도 아니고 주민등록증조차 없었다. 그는 15년 전 한국을 찾은 중국동포로, 불법체류자 생활을 하고 있다. 15개월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국적난민과에 '국적회복 신청'을 했지만 아무런 답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씨는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법무부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다.

◇고달픈 15년=경북 청도 출신인 이 씨는 열두 살이었던 1940년 일제의 노역과 궁핍을 피해 가족들과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에서 우연히 같은 고향 사람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1993년 지금은 작고한 작은어머니의 초청으로 아내와 한국에 들어와 "죽어도 고향 땅에서 죽겠다."며 대구에 남았다.

당시 불법체류자로 취업이 어려웠던 부부는 공사판 막일을 함께하며 끼니를 때웠지만 2년 전 겨울, 아내가 불과 1평 남짓한 10만 원짜리 사글세 냉방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떴다. 그는 '아내'를 화장, 낙동강에 뿌렸다. 그 뒤 폐지를 주워 연명했지만 수입이 없어 월세, 전기, 수도요금이 밀리기 시작했고 지난 겨울에는 보일러 한번 때지 못하고 냉방에서 지내다 천식까지 얻었다.

마이화 강북보건지소 방문보건사업팀 담당은 "이 씨가 보건소를 찾았을 때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얼굴이 파랗게 질린 상태였지만 돈도 없고 의료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할 처지여서 열흘치 약만 전했다."며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적 회복부터 힘들어=이 씨는 "국적을 신청한 지 15개월이나 지났는데 법무부로부터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아내는 의료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어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고 말했다.

이 씨의 국적 회복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7일 오후 2시 30분부터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국적난민과로 전화를 걸었다. 민원 ARS 안내전화는 단 2개. 1시간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전화를 했으나 전부 '통화 중'이었다. 어렵게 연결돼 ARS 안내에 따라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등 신청 안내'를 누르자 "신청한 지 1년이 지난 사람은 백지에 성명, 신청서 제출날짜,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팩스를 넣어주면 연락 주겠다."는 기계음이 울리고 끊겼다. 즉시 팩스를 보냈으나 연락이 없었다.

국적난민과가 아닌 다른 부서에 전화를 걸어 취재진임을 밝히자 부서 관계자는 '워낙 문의전화가 많아 국적난민과 민원전화로는 통화가 힘들 테니 다른 번호를 알려 주겠다'며 6개의 다른 번호를 알려줬다. 그러나 모두 통화 중이거나 받지 않았다.

◇정부의 방치=현재 전국에서 '국적 신청 및 회복'에 대한 신청건수는 약 5만 건 정도지만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국에서 이를 담당하는 인력은 4, 5명이다. 1명당 1만 건을 소화해야하는 '과다 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 또 국적 신청은 각 지역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받지만 '심사'는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국이 맡고 있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출입국관리국 한 관계자는 "신청 건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국적 신청에서 허가까지 보통 2년~2년 6개월 정도 걸린다."며 "해당 법률에도 허가까지 걸리는 기간을 정해놓지 않은데다 신청 건수는 나날이 늘고 있어 앞으로 더 큰 혼잡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