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BDA 자금 인출 및 송금 문제가 늦어지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반적인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북한은 나름대로 BDA 자금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폐쇄적인 자금 운영을 해온 북한으로서도 자금 이체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도 답답한 느낌일 듯하다. 한국과 미국 내 일각에서는 다시 북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서 외교적 해결노력을 경주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고, 한·미 외교장관 회동에서도 현 상태가 일시적·기술적 문제라는 점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북한도 명시적으로 합의이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 만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할 듯하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문제 대두 후 남북관계의 흐름을 보면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북핵문제가 악화되면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되거나 전반적인 영향을 받다가도, 여건이 조성되어 한번 복원되면 북핵상황이 다소 주춤하더라도 일정한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일정 부분 외적 환경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고,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남북관계는 북핵문제나 북·미관계의 하부 구조(sub structure)라고 주장하지만, 남북관계는 그 나름대로의 동력을 가지면서 한반도 평화 안보 구조의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다.
오는 17일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남북 열차 시험운행이 예정되어 있다. 비록 시험운행이 철도 연결에 앞서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기술적인 단계에 불과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북 간 철도 개통으로 가는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열차 시험운행을 계기로 분단 반세기 동안 끊어졌던 철길을 열고, 남북 간 평화 번영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할 날도 멀지 않았다.
철도 연결사업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야심 차게 추진키로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북측의 추진 자세는 소극적이었다. 북측은 철도 개통에 따른 체제 내의 부정적 파급력을 의식할 수도 있고, 철도 개통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눠 단계별로 더 많은 지원을 획득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북측 군부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에 개통을 눈앞에 두고도 현재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철도 연결사업과 같이 추진되어 온 도로 연결사업은 비교적 원활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현재 개성과 금강산 지구 개발에 따른 인원과 물자 수송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 철도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북측 군부는 열차 시험운행 하루 전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로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 아직 정전 상태인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사업은 양측 군대가 신변 안전을 보장해 주는 가운데 추진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군부와 대남부서 간에 철저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북한 체제 속에서 비록 우리 당국과 합의한 사안이라도 군부가 비틀어 버리면 추진하기 매우 어렵다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보여 준 셈이다.
작금에 있어 열차 시험운행은 군사적 보장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남측은 그간 회담과정에서 이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이에 따라 남북은 오늘부터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열차 시험운행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쌍방 군부가 전향적인 합의를 이뤄내길 바란다. 만약 이번에도 군사적 보장조치가 마련되지 못하여 열차 시험운행이 무산되거나 지연된다면 남북 협력사업에 거는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싸늘히 식어버리게 될 것이다.
열차 시험운행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남북협력 사업들도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차제에 쌍방 군대 간 경협을 군사적으로 확고히 보장하는 원칙적인 합의를 도출하여 군사적인 문제가 더 이상 협력사업의 진전을 가로막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양무진(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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