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발길마다 분홍, 눈길마다 유혹…지리산 바래봉 철쭉

▲ (사진 가운데)연분홍 철쭉꽃이 향연을 펼치는 지리산 바래봉 산행길. 꽃길을 따라 걷는 등산객들의 얼굴은 물론 마음에도 연분홍 물이 든다. (사진 아래)꽃이 피는 시기에 기온이 높고, 햇빛을 잘 받아 올해 바래봉 철쭉은 유달리 곱다.
▲ (사진 가운데)연분홍 철쭉꽃이 향연을 펼치는 지리산 바래봉 산행길. 꽃길을 따라 걷는 등산객들의 얼굴은 물론 마음에도 연분홍 물이 든다. (사진 아래)꽃이 피는 시기에 기온이 높고, 햇빛을 잘 받아 올해 바래봉 철쭉은 유달리 곱다.
▲ 월산식육식당의 지리산 토종흑돼지 소금구이
▲ 월산식육식당의 지리산 토종흑돼지 소금구이
▲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실상사는 우리나라 단일 사찰 가운데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실상사는 우리나라 단일 사찰 가운데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뭘까?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꽃이 갖고 있는 유한성(有限性)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 찬란함이 오래 가지 못하기에 사무치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선인(先人)들은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고 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사람의 좋은 날은 100일을 넘기지 못한다.)라며 꽃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유추해내기도 했다.

계절의 여왕 5월.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보며 가는 봄의 정취를 아쉬워하고, 더불어 인생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남해에서 시작한 철쭉의 연분홍 꽃물결이 지금 우리 산하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어머니 품처럼 푸근한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인 바래봉(1,165m).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높이가 낮아 '막내'로 불리지만, 매년 봄이면 철쭉을 보러오는 이들의 발길로 분주해지는 곳이다. 바래봉 철쭉은 해발 500m에서부터 시차를 두고 피기 시작해 정상까지 5월 내내 장관을 이룬다.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주차장에서 바래봉 철쭉 산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주차장에서 500m 정도나 올라갔을까. 눈앞에 연분홍 철쭉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둣빛 산자락을 캔버스로, 화사한 연분홍 철쭉꽃들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연둣빛과 연분홍이 엮어내는 보색대비가 산행을 나선 사람들의 눈길을 단숨에 붙잡는다. 같은 보색대비 효과를 내는 사찰 단청이 인공의 아름다움이라면 철쭉꽃이 펼쳐내는 보색대비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아름다움이다.

바래봉에 철쭉 군락지가 조성된 데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한국과 호주가 합동으로 바래봉 자락에 면양 목장을 조성, 양떼를 방목했다. 초식 동물인 양들은 온 산을 누비며 잡목과 풀을 뜯어 먹었지만 유독 철쭉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철쭉이 가진 독성 때문이었다. 짐승이 먹지 못해 버려둔 철쭉이 세월이 흘러 관광 명소가 된 것을 보고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떠올랐다.

등산로를 따라 10분쯤 오르면 갈림길. 오른쪽은 바래봉 아래 사찰인 운지사, 왼쪽은 등산로다. 등산로를 택해 얼마를 더 걸어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초입부터 사람들의 기를 질리게 할 정도로 농염한 아름다움을 뽐낸 철쭉꽃들의 군무(群舞)가 계속 펼쳐진다. 쉼없이 이어지는 철쭉꽃의 퍼레이드에 등산객들의 얼굴은 물론 마음마저 연분홍 물이 든다.

주차장에서 출발, 1시간 30분 정도를 오르는 동안 화려하게 펼쳐지던 철쭉꽃 잔치는 바래봉 7부 능선에서 멈춘다. 겨우 몽우리를 맺은 꽃이 눈에 띌 정도로 산 정상부에는 아직 철쭉이 피지 않았다. 이달 15일을 전후로 바래봉 정상까지 꽃을 피우리라는 게 현지인들의 얘기다.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는 데서 연유한 바래봉. 연분홍 꽃물결이 장관을 이룬 바래봉 꽃길을 걸으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가요 '봄날은 간다'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배꼽시계 달랠 땐…흑돼지

지리산은 그 넉넉한 품만큼이나 찾는 이에게 많은 먹을거리를 선물해준다. 일반 돼지에 비해 고기가 부드럽고 연하며 씹는 맛이 고소한 지리산 토종흑돼지도 그 중의 하나.

실상사에서 60번 도로를 따라 경남 함양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월산식육식당. 지리산 토종흑돼지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1인분에 7천 원인 소금구이를 시키자 비곗살은 눈처럼 하얗고, 고깃살은 붉디붉은 토종흑돼지가 쟁반에 수북하게 담겨 나온다. 1인분에 200g이어서 양도 푸짐하다. 고기를 먹고 난 뒤에 나오는 된장국 맛도 깔끔하다. 055)962-5025.

이대현기자

▶ 2% 부족할 땐…실상사

바래봉 철쭉 산행 후 가볍게 들를 만한 곳으로는 실상사와 판소리 동편제 명창인 송흥록의 생가가 꼽힌다.

지리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남원 만수천 기슭에 자리 잡은 실상사(實相寺).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창건된 이 절은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의 선종사찰이다. 근접하기 힘든 높다란 산중턱이 아니라 펑퍼짐한 들판에 자리하고 있는 게 특징. 찰나에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절집은 평지에 터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석물과 전각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절이지만 둘러보려면 의외로 시간이 꽤 걸린다.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어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이 탑의 상륜부를 참고했다는 동서 삼층석탑, 석등에 불을 지피기 위해 올라서는 계단석이 남아 있는 석등을 먼저 둘러보는 게 순서다. 약사전에 모셔진 철제여래좌상은 2.7m나 되는 철불로 결가부좌 자세를 취한 채 동남쪽에 있는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실상사를 찾은 사람들이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한 곳은 해우소(화장실). 생태화장실로 만들어져 새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운봉읍과 인월면을 잇는 24번 도로 주변에 동편제 명창인 가왕 송흥록의 생가가 있다. 송흥록은 조선 후기 판소리의 명창으로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했고, 웅건·청담한 창법으로 동편제를 이룩한 인물. 특히 '춘향가' '적벽가' 등을 잘 불렀다고 한다.

아담한 그의 생가를 둘러보다 보면 그가 부르는 춘향가 한 대목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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