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 공룡처럼 솟아나 있는 신축 초고층 아파트에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것이 불빛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생기를 찾는 듯하다.
이사철이다.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서있는 아파트마다 불빛으로 가득 차려면 이사철도 따로 없을 성싶다.
번거롭고 힘들기도 하지만 이사는 나른한 생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을 익혀가는 것 자체가 가벼운 스트레스이자 설렘도 안겨준다.
남이 살던 집으로 옮겨갈 때 우리가 흔히 겪는 신고식이 있다. 먼저 살던 사람이 남겨둔 이사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대충이라도 치우고 간 집은 양반이다. 엉망진창으로 해둔 채 떠나버린 얌체족들이 부지기수다. 깨끗이 쓸어두면 이사 들어오는 사람에게 복이 없다나 뭐라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들의 핑계거리 같기만 한데….
나희덕 시인의 글 '이사, 집의 기억을 나누는 의식'에 마음 씀씀이가 남다른 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물이 날 지경으로 이사를 많이 했다는 그는 최근 이사한 집의 전 주인 부부로부터 편지 한 통을 건네받았다. '이 땅의 집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라는 서두 아래 각 방의 특징과 주의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베란다의 창문 틈새 중 모기가 잘 들어오는 곳이 어디어디라든지, 다용도실의 배수구에서 나는 물소리가 처음엔 거슬리겠지만 나중엔 산중의 물소리처럼 느껴질 것이라든지, 어느 방은 문을 여닫을 때 특히 조심하라든지….' 자기들도 이사를 하느라 경황이 없었을 그 부부가 다음에 살 사람들을 위해 이토록 섬세하게 마음 써 주었다는 사실에 시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집을 매개로 서로의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누려보는 행복'이라고도 했다.
한 재미난 실험에 따르면 전 세계의 누구라도 6단계의 사람들을 거치면 연락이 닿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은 더 좁혀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 꺼내놓고 보면 모두가 사돈의 팔촌 정도는 되니까. 사람과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는 이토록 좁아지는데 정작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지는 게 문제다. 심지어 가족 사이에서도…. '가정의 달'이다. 서로간에 함께 나눌'경험'과'기억'-'마음의 사진'을 찍을 기회를 많이 가지면 좋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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