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침공이 시작됐지만 작은 영화들이 틈새를 노려 개봉한다.
그동안 국내 상업 영화들에 밀려 개봉이 요원했던 저예산영화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한 것.
'스파이더맨 3'이 관객점유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10일엔 저예산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한다. '살결'과 '경의선', '상어'가 대표적인 작품. '살결'은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이성강 감독의 첫 실사영화로 주목받고 있고, '경의선'과 '상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식상해진 관객들에게 신선한 시선을 제공한다.
'마리 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이성강 감독의 저예산 영화 '살결'은 제목만큼이나 인상적이고 강렬한 전라(全裸) 섹스신이 많이 나오는 영화.
사진작가 민우(김윤태)는 밤에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목격한다. 갑자기 도망치듯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 여자의 몸에 손을 댄 순간 민우는 사람의 생명이 피부 위에서 사그라지는 느낌을 받고 그 감촉을 잊지 못한다.
다음날 민우는 옛 애인 재희(김주령)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유부녀가 된 재희는 민우에게 아홉 번의 섹스를 제안하고, 민우와 재희는 호텔방과 민우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서로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한편 민우가 사는 새 자취방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전 주인의 심상치 않은 소지품을 자취방에서 발견한 민우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방에서 재희와 섹스를 하는 순간 소녀의 환상을 경험한 민우는 그 뒤로도 그 방에 소녀가 살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영화는 서로의 몸이 주는 쾌락에 탐닉하는 민우와 재희의 관계 위에 방의 전 주인이었던 소녀의 사연을 오버랩시키며 무언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풍긴다.
단편영화 '하루'로 호평받았던 박흥식 감독의 저예산 영화 '경의선'은 상처를 입은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에게 얼마 전부터 간식거리와 잡지를 건네는 한 여자가 있다.
동료도 알 수 없을 만큼 매번 바뀌는 열차 운행시간을 어떻게 알고 매일같이 정확한 시간에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등장은 어느덧 만수의 일상에 활력이 된다.
어느 날 열차 투신 자살 사건으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만수는 특별휴가를 받고 경의선 기차에 오른다. 한편 대학강사 한나(손태영)는 같은 과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 선배와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녀의 공허한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생일을 맞아 그와 함께 떠나려던 제주도 여행은 선배의 부인에게 불륜관계가 탄로나는 바람에 무참히 산산조각나버리고 부인의 이혼 요구 앞에 망설이는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한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애써 무시했던 상황과 마주하고 난 한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경의선 기차에 몸을 싣는다.
영화는 너무나 다른 배경과 상처를 갖고 있는 두 남녀가 우연히 경의선 종점에서 만나면서 이뤄지는 치유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경의선'은 8억 원 정도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상어'는 비주류 인간군상이 주인공인 독특한 느낌의 영화다. 대구근교에서 촬영해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띈다. 섬에 살고 있는 어부 영철이 흰 상어 한 마리를 친구 준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더운 여름 도시에 나타난다. 준구는 어딘가에서 노름에 빠져 나타나지 않고 영철의 가방 안의 상어는 썩어가기 시작한다. 영철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유수는 자신의 집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교도소 출소자이고, 미친 여자 은숙은 상어의 썩는 냄새가 자신이 사산한 아기의 냄새라고 착각하고 있다.
개봉관이 적어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적지만 눈여겨볼 만한 예술영화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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