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독백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 환한 미소를 짓던 단발머리 딸아이(17)를 추억 속에 두고 있습니다. 뽀얀 피부에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유독 봄을 좋아했지요. 파릇파릇한 풀내음과 꽃향기가 좋다며 나들이 가자고 조르던 철부지. 따스한 봄기운을 닮은 아이는 유달리 부모 걱정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 둔 그 해, 11세였던 딸아이가 제게 쪽지 하나를 수줍게 건넸지요. "다 잘될 거예요. 큰딸이 아빠 곁을 지키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아빠 사랑해요."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아비에게 버팀목이 돼 주는 딸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거든요. 회사를 나온 후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분식집을 차려 생계를 이어갔지요. 그 뒤부터 우리 부부는 딸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숙제를 봐 줄 수도, 학교에 데려다 줄 수도 없었지요. 하지만 딸 아이는 중학교 내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도 비평준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세상이 우리 딸아이를 시기한 것이···. 봄을 좋아했던 아이는 지난 3월 9일 오후 자율학습 때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병원으로 갔지요. 뇌출혈. 이제 갓 17세 된 딸아이에게 닥친 불행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어요. 9일 뒤 또 한 차례의 뇌출혈이 있었고 아이는 24시간의 수술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딸의 독백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간이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아빠가 보입니다. "편안하게 누워 자."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네요. 뇌출혈 후 왼쪽 몸에 마비가 왔거든요. 듣고 보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왜 이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지···. 처음엔 무서웠어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혼란스러웠어요. 게다가 제 오른쪽 머리엔 두개골 뼈가 없습니다. 뇌동맥 재생수술 전까지 빼야 한다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외계인 같아요.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나봐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빚을 내 병원비를 마련하는 아빠에게도 모질게 굴었거든요. 아빠 앞에서 흐느끼며 울었어요. 다행히 눈물은 제 맘껏 흘릴 수 있었거든요. 아빠도 힘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절 위로해 주는 아빠는 가슴으로 울고 있었겠지요. 한순간 바보가 되어버린 딸을 바라보는 아빠가 얼마나 힘들지···. 재활치료도 잘 받고 2, 3차 수술도 마음 단단히 먹고 받으려고 합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8일 오전 영남대병원에서 만난 배태수(가명·47) 씨는 왼쪽 몸이 굳어버린 딸 지연이(가명·17)의 몸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오른쪽 머리가 움푹 파인 채 아빠의 마사지를 받고 있는 지연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배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 씨는 "지연이가 반응이 늦어 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활치료를 시작한 지연이는 최근 조금씩 걷게 됐다고 한다. 1차 뇌수술비로 3천만 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배 씨는 집을 담보로 사채를 쓰며 병원비를 조금씩 정산해가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이 찾은 이날도 돈을 빌리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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