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의 첫날, 중풍에 걸린 남편과 그에게 1년3개월 동안 설탕물만 먹인 아내, 그리고 이런 사실을 모른 척 지내온 자녀가 속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이 방송돼 화제가 됐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앙상한 남편의 야윈 모습이 방영될 때, 그를 학대한 부인과 이를 방조한 자녀들에게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학대 뒤엔, 30년에 걸친 아내와 자녀에 대한 남편의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어두운 과거가 함께 밝혀지면서,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게 되었다. 한편은 남편의 지난 시절 저지른 폭력을 생각할 때, 아내의 학대와 자녀의 방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 편은 그래도 병든 약자에 대한 학대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방송국의 갑작스런 도움 요청으로 이 사례에 처음 개입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은 막막하기만 했다. 과연 이 가정의 어려움을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가 있기는 한 것인지, 만일 있다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지난 13년, 몇몇 단체와 기관을 거쳐 이제 가족사랑샘터를 통해 제법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적지 않은 수의 성공도 거두었다 싶기도 하지만, 아직도 위기에 놓인 가정을 만날 때마다 나를 압도하는 감정은 이러한 막막함이라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IMF 구제 금융 전후에 더욱 그러했고, 지금도 경제적 여건이 가족해체의 중요한 요인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숨 가쁘게 일어나는 사회변화를 미처 쫓아가지 못하는 지체현상이나 저급한 대중문화의 만연 등도 가족해체의 중요한 요인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매맞는 아내, 영아 유기, 아동 학대, 알코올 중독 등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을 모두 찾아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원인을 안다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닌 것이 현실이다.
막막함이 아무리 무겁게 나를 누른다 해도, 내가 버리지 않는 한 가지 희망은 "해결의 열쇠는 문제에 처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맹랑한 믿음이다. 상담을 하는 나보다 문제에 처한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며,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강점'이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위기에 처한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시달린 나머지 서로와 자신의 문제점과 약점에 체념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개개인이 가진 강점은 서로의 장점을 보고 평가하려는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발견될 수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용서와 화해가 갖는 놀라운 능력이다. 상처가 있다면, 피해자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다. 이런 용서와 화해는 어느 경우에서나 빠를수록 좋다. 화제가 됐던 TV프로그램에서도 방송이 끝날 무렵, 아내와 자녀들이 남편(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손을 맞잡는 감동적인 화해과정을 보게 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무조건 이를수록 좋으며, 가정 위기의 강력한 해결책이다.
내가 접한 모든 사례에서 그런 화해와 용서의 순간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런 순간들은 모두 기적을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가정의 달 오월만큼 가족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좋은 시기는 없을 것이다. 혹시 지금 가족간에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생각된다면, 지금 바로 전화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라도 한 통 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황혜숙 사회복지사·(사)가족사랑샘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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