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골목 어귀에서 구슬'딱지치기나 땅따먹기가 놀이의 전부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런 놀이도 시들해질 무렵, 한 번쯤 푹 빠져드는 취미(?)가 있게 마련이다. 먼저 오락실 지킴이.
아침 등교길에 잠 자는 오락실 주인을 깨우는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하루 종일 어둠컴컴한 오락실 한 구석에서 50원 짜리 갤러그, 엑스리온, 제비우스에 푹 빠져 오늘은 반드시 최고 기록을 깨겠다며 끼니까지 과감히 마다하던 이들. 돈이 떨어지면 테니스줄이나 철사줄로 동전 투입구를 열심히 쑤셔대다가 주인에게 들켜 귀가 떨어질 듯한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만화책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친구들도 적잖았다. 50원을 내면 한 권을 볼 수 있는데, 3분의 2쯤 보고는 "이거 봤던 건데요."하며 능청스레 다른 책으로 바꿔보는 넉살을 지녔다. 소년중앙, 어깨동무의 별책부록만으로는 감질맛 나던 시절, 전과 2권 두께를 합친 통판 만화책 '보물섬'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만화 환타지아 시대'라도 도래한 듯 환호했다.
이들과 달리 나름 한 차원 높은 취미 문화를 향유한다고 자부하는 부류가 있었으니 바로 조립식 장난감, 즉 '프라모델족'이다. 아직 프라모델 초기였던 시절, 아카데미과학의 '건담 시리즈', 에이스과학의 '전투기 시리즈'는 자칭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로망이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가(?)로 여겨지던 몇 천 원 짜리 프라모델 세트를 사들고 동네 어귀에 나타나면, 딱지치기에 여념없던 아이들은 프라모델이 뿜어내는 광채에 절로 숙연해지며, 말 없이 조립하는 모습이라도 보겠다며 종종 걸음으로 뒤를 따르곤 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어른들은 인터넷 동호회까지 만들어 열심히 플라스틱 로봇이며 탱크, 전투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상무(35) 씨도 그 중 한 명. 인터넷 다음카페 '여유가 있는 모형' 회원인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을 못잊어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프라모델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횟집 조리실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연평균 100만 원 이상 프라모델에 투자한다. 소량 주문생산하는 희귀 제품이라도 나올라치면 한 번에 100만 원 이상 쓰기도 한다. 한 때 수천만 원 어치의 프라모델을 보유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팔고 일부는 동호회원들에게 양도하는 바람에 지금은 얼추 300만~400만 원 상당의 프라모델 보유자다. "정회원만 전국적으로 수천 명을 헤아립니다. 희귀모델은 동호회원들 간에 사고 파는데, 취미로 하는 것이어서 값을 매기기는 어렵지만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도 많습니다." 생후 1개월된 아들 쌍둥이 아빠인 이 씨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과 함께 프라모델을 만드는 게 꿈이다.
프라모델 전문점 '하비랜드'를 운영하는 정우영(38) 씨도 꿈을 좇아 가게를 열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프라모델이 떠올라 가게를 차렸고, 지금은 전문점 운영 7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죠. 예전엔 프라모델 만드는 어른들이 극히 드물었지만 요즘은 고객 중 상당수가 성인입니다. 그만큼 가격대도 높아졌구요."
소형은 1, 2만 원에 구입할 수 있지만 가격이 10만 원대를 웃도는 제품도 많다. 일본 반다이사 '건담 시리즈'의 경우, 하이 그레이드(high grade)가 1만~2만 원선, 마스터(master)는 2만~7만 원, 최고 난이도인 퍼펙트(perfect)는 10만 원을 넘어선다. 눈썰미와 손재주만 있다면 하이 그레이드는 충분히 조립할 수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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