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선 화암 8경과 화암동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강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나무 가지에 앉은 새는 바람불까 염려요/당신하고 나하고는 정 떨어질까봐 염렬세/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구절양장 고갯길을 오가며 아리랑 곡조에 맞춰 남정네는 지게 춤 덩실대며 힘든 농사일의 피로를 잊었고 아낙네는 물박장단으로 길쌈이랑 밭일의 고단함을 삭였던 정선 아리랑.

긴 사설을 빠른 가락으로 촘촘히 엮다가 후렴구에서 높은 소리로 한가락 길게 뽑아지는데 막힘이 없다. 아우라지 처녀의 그리움이 한껏 배인 듯 슬프고 처량한 메나리 가락은 높은 산과 깊은 골을 타고 흘러간다.

화암 8경과 테마형 화암동굴이 있는 정선여행은 정선읍에서 태백방향 424번 지방도를 타고 이어진다.

◆혀끝을 톡 쏘는 물과 바람이 빚은 풍경

정선군 동면 화암약수(1경)는 계곡 입구 매표소에서 1.2km와 1.5km 지점 두 군데에 있다. 첫 번째를 쌍 약수, 두 번째를 본 약수로 부르며 바위틈에서 각각 2곳씩 솟아난다.

1913년 문영무라는 사람이 청룡과 황룡이 엉켜 승천하는 꿈을 꾼 뒤 기억을 더듬어 승천장소를 찾은 곳에서 솟았다는 화암약수는 산화철탄산수로 되어 있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첫 맛과 조금은 비릿한 맛이 섞여 있어 마시고 난 후에 바로 트림이 날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 위장병과 피부병, 눈병과 빈혈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4곳의 물맛이 약간씩 다른 것도 유별나다.

약수터 옆에는 청룡과 황룡의 복된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쌓은 돌탑들이 있다.

약수터 입구를 나와 왼편에는 기암괴석 절벽 위를 걸어가는 형상의 거북바위(2경)가 있다. 정성을 다해 빌면 무병장수하고 액운을 물리친다고 정선사람들은 믿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북바위 맞은편에 있는 맷돌바위는 거북바위(수컷)를 향해가는 암거북 모양을 하고 있다. 맷돌바위는 화암약수 입구에 있는 식당 안마당에서 더 잘 보인다.

약수터를 나와 화암동굴 쪽으로 가면 넓은 반석과 맑은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용마소(3경)다. 아기장수와 용마가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여행의 피로를 씻는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용마소에서 태백준령을 타고 흐르는 하천 10리 길은 규모는 작지만 금강산처럼 아름답다는 소금강(6경)이다. 하천 양쪽 기암절벽의 기묘하고 장엄한 형세가 감탄을 자아내는가 싶더니 그 끝에 몰운대(7경)가 웅장한 절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나란히 선 노송들의 뻬어난 수형과 멋진 풍광이 만들어내는 몰운대는 구름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쉬어간다는 곳이다. 도로변에서 약 300m 숲길을 따라 들면 몰운대 꼭대기로 낭떠러지 아래로 강원도 산간 비탈 밭과 취락구조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을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경관도 일품이다.

몰운대를 나와 길 맞은편 산길로 접어들면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어 있다는 광대곡(8경)이다. 계곡을 따라 12용소와 폭포들이 있어 청량한 계곡바람이라도 불면 선경이 부럽지 않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갠데 우리네 언제 살아서 열두 고개 다 넘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 나라에 이내 몸들 어이해서 태어났느냐/…/나는 널 안고 너는 날 안고 단둘이 꼭 끈안고 여산폭포 돌 글 듯이 달달 굴러보세."

땅이 척박한 정선은 대신 효험 있는 약수가 있고 경치 좋은 산천이 둘러져 있어 인정이 넘쳐난다. 아리랑 고개 너머 바깥세상 이야기는 구름이 전하는 한 줌 소식이면 족 할 듯싶다.

◆노다지의 꿈이 만난 지하 동굴세계

금광이었던 천포광산을 캐 들어가던 중 발견된 천연 종유동굴과 갱도를 활용해 조성된 길이 1,803m의 화암동굴(4경)은 국내 유일의 테마형 동굴로서 5개 지하공간(역사의 장, 금맥 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천연동굴광장)으로 구성돼 있다.

주차장에서 동굴입구까지는 가파른 언덕을 20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편하다. 527m의 모노레일을 타면 정선 아리랑이 들리는 가운데 주변 경치를 관망할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동굴에 들면 가장 먼저 금맥을 찾던 당시의 채광과 준비작업 등 광부들의 모습이 동굴 벽면마다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해 놓아 땅 속 광부의 삶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관람객이 착암기를 직접 작동해 볼 수도 있다. 한 켠엔 음용가능한 광천수가 아직도 떨어지고 있다. 특히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질 듯한 모형갱도는 관람객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금맥을 따라 갱도의 위와 아래로 연결된 계단 길이 아찔할 정도이다. 노다지를 찾아 미로처럼 급경사와 완만함이 섞여 있는 이 코스는 비록 땅 속 길이지만 인생의 여정과도 같은 느낌이다. 내부 좌우와 상하를 둘러보며 계속 내려가는 땅 속 세상은 한마디로 요지경. 때론 황홀하고 때론 긴장감이 목덜미를 낚아챈다.

10여m천장에서 실제 기어가는 듯한 공룡과 그 옆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 상은 신기할 만큼 닮았다.

붉은 눈을 번쩍이며 도깨비가 앞을 지키는 동화의 나라는 지금까지 지하 굴속을 탐험하며 약간은 겁을 먹었을만한 아이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끔 재미있게 꾸며져 있다. 진짜 금괴와 금의 쓰임새 등을 테마로 한 금의 세계는 금에 대한 영상과 홀로그램을 통해 교육적인 효과도 배려해 놓았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면 걷기를 수십 여분. 오랜 시간과 지하수가 만들어낸 태고의 신비이자 비밀장소인 천연종유동굴을 만난다.

수 억년도 넘는 세월동안 한 줄기 빛도 없이 오직 탄산석회수와 끈질김만으로 빚어낸 900 여평의 지하세계는 석순과 석주, 유석폭포를 비롯해 20m가 넘는 부처상, 돌이 피워낸 석화, 장군상, 잣송이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들이 지하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일년에 0.1mm~0.2mm씩 자라는 종유석(천장에서 아래로 자람)과 석순(천장에서 떨어진 물 속에 포함된 탄산칼슘이 쌓여 위로 자람), 그리고 이 둘이 만나 형성된 석주는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인가. 상상의 한계에 맞닥뜨린다.

동굴벽면과 천장에 피어난 석화와 곡석(돌이 뒤틀려 구불구불하게 자람)은 또 어떤 이유로 저렇게 자라난 것일까. 의문의 꼬리를 무는 화암동굴이지만 그만큼 이 동굴의 자랑이자 특징이기도 하다.

1시간~1시간 30분이 걸리는 화암동굴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 식당가 뒤편에 옛 천포금광촌이 재현돼 있다. 서낭당, 물레방아, 살림집이 너무 생생해 너털웃음을 짓게 한다.

▷화암약수 입장료:어른 1천500원, 청소년 1천원, 어린이 700원. ▷화암동굴 입장료:어른 4천원, 청소년 3천원, 어린이 2천원. 모노레일카:어른 2천원, 청소년 1천 500원, 어린이 1천원.

◇여행 팁

정선에 가면 빠뜨릴 수 없는 먹을거리가 곤드레나물밥과 콧등치기 국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곤드레는 궁핍했던 시절 구황식물이었으나 요즘은 웰빙식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산채음식이며 메밀반죽을 밀어 넓적하게 칼국수처럼 썬 콧등치기 국수는 후르륵 면발을 먹을 때 면의 탄력에 국수가닥 끝이 코끝을 때린다고 이름 붙여진 국수로 담백하면서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한편 정선의 화암 8경을 둘러볼 때 당일에 한해 화암 약수터 주차장과 화암동굴 주차장은 공동으로 이용되므로 어느 쪽이든 영수증은 꼭 챙기는 것이 좋다.

일정 탓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함백산 기슭에 자리한 정암사를 둘러본다면 훨씬 짜임새 있는 정성여행이 될 수 있다.

◇정선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영월 방향 자동차 전용도로~평창방향 59번 국도~문곡삼거리에서 우회전, 42번 국도~밤치재 너머~정선읍 방향.(3시간 30여분 소요)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