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키작아 야구 포기했던 권혁

2004년 10월 16일. 잠실구장의 검은 전광판에 노랗게 세 숫자가 새겨지는 순간 일제히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누구나 던지고 싶지만 쉽게 던질수 없는 156km라는 숫자였다. 이 공을 던진 주인공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야구를 하고 싶어도 갈 곳 없던 평범한 소년, 권혁이었다.

성광중 야구부원 권혁은 다른 투수에 비해 키가 작았다. 수창초교 시절의 키(160cm)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작은 키로 투구에 힘이 실리지 않아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권혁은 2학년 중반 어느날 야구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시 책을 잡았고 경상공고에 진학했지만 막상 선반이나 용접 등 기술 공부는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학년 초반부터 키가 조금씩 자라더니 중반에는 어느새 180cm로 훌쩍 커 버린 것이었다. '왜 진작에 키가 크지 않았을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춘기의 본격적인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됐고 건성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돌아와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권혁은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불현듯 수창초교 시절 에이스로 나서 우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쩍 커진 자신의 덩치라면 그때만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하고 개인 훈련을 시작할 무렵 지인을 통해 당시 경북고 감독에서 물러나 잠시 쉬고있던 서석진 씨를 소개받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홀로 꾸려가는 가정 형편에 다시 돈이 많이 드는 야구부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2학년 중반에는 키가 186cm까지 자랐고 막연한 꿈 만으로 개인훈련을 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1999년 6월 대구 지산중학교의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한 아파트의 창 곁에서 오대석 감독(당시 포철공고 감독)은 오랫동안 운동장 한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 포철공고는 권혁에겐 은인같은 존재였다. 학교의 지원이 많아 돈이 별로 들지 않았고 우연을 인연으로 생각한 오 감독의 배려로 빠르게 몸을 만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2학년 말 처음 경기에 등판한 권혁의 투구는 137km를 기록했다. 키가 187cm로 자란 3학년 때는 평균구속 142km를 기록하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른 스피드를 만들어낸 선수로 주목 받았고 그 해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프로에 와서도 놀랍게도 키는 계속 자랐다. 2년새 5cm가 더 자라나 191cm가 된 권혁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구원 등판, 156km라는 꿈의 스피드를 기록했다. 6회말에 등판해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로 11타자를 연속으로 처리하면서 한점의 리드를 지켰다. 플레이오프의 향방을 삼성쪽으로 기울게 한 약관의 투수에게 보내는 3만 관중의 찬사는 마치 인간승리의 축가 같았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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