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밥값 내놓아라!

일 년에 딱 한차례 사월초파일에만 산문을 여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 조계종종립특별선원으로 수행하는 스님들 외에는 일절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 1982년 이후 25년째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7일. 근대 茶(차) 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진 봉암사에서 '2007 문경한국전통찻사발축제' 성공을 기원하는 육법헌공다례 행사가 있었다. 이 덕에 잠시 봉암사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신라시대의 고찰임에도 봉암사는 고색창연한 그런 모습이 아니다. 하긴 수행 환경에 맞춰 건물을 짓다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 그래도 한국불교사에서 '수행의 상징'이라는 60년을 이어온 명성은 사찰 내에 가득한 숙연한 기운으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인 1947년. 성철 스님을 비롯해 청담, 향곡, 자운, 월산, 혜암, 법전 등 훗날 한국 불교계를 이끌어가는 스님들이 봉암사에 모였다. 이들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 불교를 바로잡자는 다짐 아래 수행에 들어갔다. 이것이 봉암사 결사(여름과 겨울 3개월간 안거에 들어가는 것이 결제이고 안거 기간이 9개월 이상일 때 결사라고 함)다.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뜻이었으니 시쳇말로 중 노릇 똑바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채찍을 놓지 않았다.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등의 공동수행 규칙도 만들었다. 결사가 진행 중인 당시 성철 스님은 수행을 게을리하면 여지없이 "밥값 내놓아라!"는 호통으로 정진 중인 스님들을 독려했다.

지금 와서 '봉암사 결사'를 들먹이는 건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서 현실의 상황을 바로잡자.'는 60년 전의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해서다.

지난해 말 영국신경제학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 순위와 영국 레스터대학 발표 행복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78개국 가운데 똑같이 102위에 올랐다. 올해 초 대한민국학술원이 발표한 서울시민의 행복지수도 세계 10대 주요도시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눈앞인데 행복지수 102위는 아무래도 의아하다. 세계경제규모를 따져 봐도 유독 낮은 순위다. 행복학을 강의하는 경제학자들은 소득이 1만 달러가 넘으면 소득에 비례해서 행복지수가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할 정도가 되면 행복의 요인을 다른 데서 찾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들을 위해서라는 변명 하에 온 나라를 흔들고 있는 분에 넘친 한 재벌 아버지의 처신 때문일까.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 때문만은 아닐 게다.

신문을 들여다보자. '정국 혼미, 득실 계산, 중재 거부, 집안 싸움….' 정치면 머리글들이다. 국민들이 과연 행복을 느낄 틈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정치란 뭔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 고개를 돌린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임에도 골칫덩이 취급을 한다. 정치 때문에 국민이 불행해진 탓이다.

그래서 정치권에 감히 청해 본다. 대선을 꿈꾸려거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려거든 60년 전의 '봉암사 결사'를 되돌아보라. 왜 봉암사 결사가 한국 선불교를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는지, 당시 함께 수행했던 스님들 중에서 종정이 4명이나 나온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60년 전 결사에 참여한 스님들은 비단으로 만든 袈裟(가사)와 長衫(장삼)을 버리고 직접 물을 들인 회색 광목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부처님의 법에 맞지 않다며 나무로 만든 밥그릇인 바리때까지 내다버렸을까.

오는 2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바리때를 버릴 만한 현실인식이 되어 있다면 이날 일 년에 딱 한 번 산문을 여는 봉암사에 다녀오라고 권해 주고 싶다. 마침 이날 3만여 명의 인파가 봉암사에 몰린다고 하니 민심까지 챙길 수 있는 호기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봉암사에선 2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밥값 내놓아라."는 호통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박운석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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