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은행 창구영업 마감시간을 지금의 오후 4시 30분에서 1시간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초 이런 내용을 담은 공동 임금단체협상 안건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대부분의 언론은 비판의 칼을 들었다. 진보 성향이라고 불리는 매체조차도 금융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 우려를 표시할 정도였으니 뭇매를 맞았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금융노조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는 네티즌들의 비난글로 도배됐다. 하지만 금융노조는 높은 노동강도와 창구업무 비중 축소를 명분으로 이달 초 임단협 요구안을 은행 측에 전달했다.
금융노조의 은행 창구영업 마감시간 단축 요구는 대부분의 비판처럼 고객을 무시한 집단이기주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흐름에 끌려가 철회만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금융노조 요구의 배경과 비난 원인, 또 다른 해결 방법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국민 배신하는 집단이기주의
금융노조의 이번 요구는 우선 은행 이용자의 입장에서 공격당한다. 서비스업인 만큼 고객의 편의를 높이는 데 힘써야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민감해서는 곤란하다는 요지다. '자동화로 고객 불편이 크지 않을 것이란 설명은 집단이기주의 발상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만든다. 하루가 바쁜 서민들은 요즘의 4시 30분까지도 은행을 보기가 힘겹다. 자영업자들에게 영업시간 단축은 결제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부담이다. 기계가 낯선 고령자 고객들로선 갈수록 은행 문턱이 높아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객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영업시간 단축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신문 사설)
살인적인 노동 강도 운운은 외국 은행과의 영업시간 단순 비교에 의해 무시당한다. '미국 은행은 평일에 통상 오후 5, 6시까지 영업을 한다. 토요일에 문을 여는 은행도 많다. 그곳은 은행원이 잔무가 없어 영업시간을 늘리겠는가. 은행이 외환위기 때 국민 세금으로 살아났다는 점이나 상대적으로 고소득 직종이라는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이래선 곤란하다. 고객에 서비스하는 게 본령인 직종에서 본인들의 편익만 생각해서야 되겠는가. 관공서의 민원부서도 목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근무를 하는 상황이다.'(신문 사설)
금융 위기를 겨우 넘긴 게 언제인데 벌써 그때를 잊고, 국민들의 고마움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익만 좇느냐는 비판도 준엄해 보인다. '국민은 외환위기 때 세금으로 부실 은행을 대신해 고객 예금을 지급했고 부실채권을 사줬으며 부도위기 은행에 출자까지 했다. 그 후 은행 주가가 크게 올라 공적자금의 대부분을 환수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그 과실을 은행원들만 챙겨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상대적 고임금을 누리면서 서비스 덜 하기 발상이나 하니 도덕적 해이에다 서비스경쟁 개념 부재(不在)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신문 사설)
이런 논리는 결국 금융노조가 요구안을 철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권리까지 포기해야 풀릴 수 있다는 시장만능의 해결책으로 이어진다. '은행원의 노동 강도를 줄이는 정답은 인원을 늘리고 임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포함해 정규 인력 충원을 확 늘려 노동 강도를 줄여야 한다. 금융노조가 왜 정답을 외면하는지 궁금하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취업을 못해 놀고 있는 청년 비경제활동 인구가 415만 명이나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원의 정년 연장도 현재로선 은행 취업 장벽만 높일 뿐이다. 귀족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를 확대하고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 눈에 훤하다.'(신문 사설)
▨ 삶의 질 높이는 사회적 노력 필요
금융노조의 영업시간 단축 요구는 창구 마감 이전과 이후에 계속되는 과도한 근로에서 나왔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 속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진단조차 찾기 힘들다. 영업점 셔터가 내려진 후에 은행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도 궁금해한다. 월말 또는 시제가 맞지 않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과연 그들이 밤늦게까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일하는지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주당 근로시간이 법에서 정한 40시간을 훨씬 넘어 50~60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는 "저녁에 바쁜 건 비정규직들이지 정규직 중에는 바쁜 직원이 몇 없다."고 자성하는 은행원의 이야기도 들린다. 무조건 공격할 게 아니라 진상부터 알고 볼 일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는 은행권에서 감원이 심한데다 창구영업 이외의 업무가 늘어 8시 반 이후의 퇴근이 일상화됐다는 점,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과 상사의 과도한 요구를 못 견뎌 과로사한 은행 노동자들도 있었다는 점 등을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무인기계와 인터넷뱅킹이 발달된 이 시대에 과연 은행노동자를 장시간 창구업무에 종사시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런데 이 제안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보수언론들이 배부른 노조를 저주한 데 이어 90%를 넘는 대중이 은행 업무 시간 단축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제발 업무 스트레스를 좀 줄이게 해달라는 은행 노동자들의 호소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90%의 응답자들 중에서는, 분명히 스스로도 심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도, 머잖아 과로사로 요절할 이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신문 칼럼)
소비자의 요구와 노동자의 요구가 충돌할 때 반드시 소비자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면이 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조화시킬 수 있다면 마땅히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업시간은 늘리되, 개별 노동자의 근무시간은 줄인다. 어떻게? 그것은 곧 노동자 수를 늘려 교대제로 운용하면 된다. 이때 아무 문제가 없는가? 예컨대 은행 경영진들의 저항이 예상된다. 노동력을 극도로 절감하고 긴축하여 겨우 수익성을 높였더니 증원이라니, 돈 안 되는 논리가 아닌가. 그래서 이해관계 충돌은 피할 길 없다. 결국 이 부분은 노사와 더불어 시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다.'(신문 칼럼)
은행 영업시간 단축을 사회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단계적 과정 가운데 하나로 보자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모두가 덜 일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삶의 질을 드높이자는 아이디어다. 은행 영업시간을 늘려 장시간 근로를 하는 이들에게도 문을 열자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자도 일을 줄이고 은행도 시간을 줄여 모두 조금씩 여유를 늘리도록 하자는 제안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주5일제를 하기 전엔 토요 휴무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막상 토요일에 놀아도 세상은 역시 잘 돌아가는 이치와 같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금융노조 제안은 단순히 은행 노동자들만 편히 살려는 이기적 발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한 출발점이란 의미가 있다. 은행부터 시간 단축을 하면 사람들은 삶의 패턴을 새 기준에 맞게 조절해 삶의 균형을 다시 잡을 수 있다.'(신문 칼럼)
금융노조에 따르면 2001~2005년 사이 금융권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3천2명이며 그 가운데 사망자는 18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한 은행에서는 7개월 사이에 7명의 직원이 심근경색, 심장마비, 뇌출혈 등으로 사망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금융노조의 영업시간 단축 요구를 단순히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기출문제
▷기업 같은 경제 단체의 이익 활동이 법적으로는 정당하나 실제로는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많다. 이러한 면에 대하여 자신이 경영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 보시오.(서울대)
▷개인의 이익과 소속 집단의 이익, 소속 집단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 어느 이익에 따라야 하는가?(숙명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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