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장석남 作 '마당에 배를 매다'

마당에 배를 매다

장석남

마당에

녹음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 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세상에 온 모든 생들

측은히 내려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속에 쌓고 있는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날 날이

곧 오리라

오,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오월에 접어들자 그토록 다양하던 신록도 녹음 한 가지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마당에 배를 맨다고? 한번 따져보자. 녹음을 싣고 있는 배라면 나무가 아니겠는가. 잎사귀 무성한 마당가 나무에 눈길을 비끄러맸다는 말이 되겠다. 불길 번지듯 타오르는 저 생명의 황홀. 그러나 언젠가는 저 잎들도 '배를 풀어' 떠날 날이 오리라. 때는 저녁 어스름, 일찍 뜬 별들이 '풀포기처럼' 듬성듬성 보이고 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저녁별의 모습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 있다고 표현하는 섬세한 언어 감각. 그 별빛은 마치 누군가의 측은한 눈빛으로 느껴진다. 왜? 마당가의 풀들이나 나나 저 나무, 무릇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늘 갈증에 시달리는가. 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하리, 이 생을 마감하고 돌아가는 그 '뒷모습'까지도.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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