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이 있는 길)윤선도의 '오우가'

연못에 배 띄우고 노니는 풍류

이제 세연정으로 갈 때다. 산등성이에서 달려오는 눈발이 다시 거세어진다. 이 눈길에 세연정으로 갈 수 있을까? 문학기행단 동료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하다. 민박집에서 부른 보길도 토박이 운전사 아저씨는 그래도 태평이다. 이 정도는 걱정하지 말란다. 섬 날씨는 자주 그러니까 충분히 갈 수 있단다. 눈이 흔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에게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일상인 모양이다. 차가 출발하자 신기하게도 퍼붓던 눈이 조금씩 그친다. 좁은 고갯길을 건너 제법 넓은 포장도로를 지났다. '고산 윤선도 사적지 세연정 안내도'라고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그쳤다 싶었던 눈이 다시 퍼붓기 시작한다. 섬 날씨는 정말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세연정으로 들어섰다.

내 버디 몃치나 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밧긔 또 더 야 머엇 리

(윤선도, '오우가(五友歌)' 서시)

고산 윤선도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들어와 13년간 은둔 생활을 한 보길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세연정. 그는 '오우가'에서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을 사랑했다 하지만 겨울 보길도는 동백나무 천지다. 만개(滿開)했다고 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세연정에는 곳곳에 많은 동백꽃이 이미 피어 있다. 세연정 원림 입구에서 만난 작은 대나무 숲도 이미 빨간 동백꽃에 가리어 대나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송이송이 피어난 동백꽃 위에 하얀 눈송이가 소리도 없이 덮인다. 하지만 세연정 앞의 낙락장송은 무거운 눈덩이를 머리 위에 얹고서도 여전히 그 위세가 당당하다. 윤선도가 살았던 그 당시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고 전해지는 동대(東臺)와 서대(西臺), 이제 그 무대도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때 이른 동백꽃의 빨간 꽃송이가 날리는 눈송이와 함께 화려한 군무를 연출하는 가운데, 주인을 잃은 정자 앞 소나무는 무거운 머리를 드리운 채 여전히 말이 없다. 설경에 취해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걸어가는 기행단의 모습과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누운 세연지의 고요함, 그 위에 가지가지 드리운 붉은 동백꽃의 단아함은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이다.

'세연(洗然)'이란 주변의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인공 조성된 연못 '세연지(洗然池)'는 윤선도가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고산은 이 초록빛 맑은 물 위에 배를 띄우고, '세연정(洗然亭)'이란 이름의 정자를 지어 품격이 높은 풍류를 즐겼다. 아마 스스로도 '세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런 삶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우리는 여러모로 부족한 속인들이다. 아름답고 맑은 풍경에 취해 즐기는 것도 잠시, 내리치는 눈발이 만들어내는 지독한 한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세연정 주변에는 윤선도의 또 다른 벗인 다양한 돌들이 저마다 제 위치를 지키고 서 있다. 이른바 '칠암(七岩)'이라 불리는 일곱 개의 바위. 고산이 나름의 계산을 가지고 배치했을 이 바위에 숨은 뜻은 알 길이 없다. 300년이 넘는 시간의 거리뿐 아니라 어리석기만 한 속인과 시대를 풍미한 시인이라는 그릇의 차이 또한 엄연히 존재하지 않겠는가.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의 '혹약암(惑躍岩)' 정도가 눈에 띄는데, 속인의 눈에는 뛰기엔 너무 둔하고 무거워 보이는 평범한 바위일 뿐이다.

낯선 도시에서 온 속인들도 이제 남은 흥이 다한 듯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보길도 바다에 낚싯대 한 번 드리워 보지 못하고 내일은 다시 바쁜 일상이 숨쉬는 뭍으로 돌아가야 할 터이다. 고산의 낙원은 그가 죽은 뒤에도 이리도 아름답게 남아 우리를 불러들이고 있건만, 어리석기만 한 나의 낙원은 지금 어느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것일까.

고산 윤선도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앞서서 나아가는 이의 '고독함(孤)'을 달래줄 벗은 누구였던가. 어쩌면 그는 홀로 우뚝 솟은 '산(山)'처럼 외로웠기에 역설적으로 이토록 화려한 원림을 만들고 호사스러운 연회를 즐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우가'를 읊조리면서 타고 왔던 카페리호를 타고 천천히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빠져나왔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작자가 56세 때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속에 들어 있는 6수의 시조로,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서시(序詩)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自然愛)와 관조를 표현하였다. 자연물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궁극적인 가치관을 노래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어 절묘한 경지로 이끈 시조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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