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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삶의 터전속으로)영남 지방의 군사 요충지 - 가산산성

▲ (위로부터)가산산성, 송림사, 한티순교지
▲ (위로부터)가산산성, 송림사, 한티순교지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설화나 풍습과 같은 지역의 문화적 특징이 산과 연관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산을 경계로 지역의 생활권이 나누어지는 사례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굳이 우리나라만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산은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땅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을 굽어 살펴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늘 신성시되어 왔으며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전쟁에서 산의 중요성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산을 지키는 것은 곧 그 지역을 지키는 것-반대로 얘기하면 산을 점령하는 것은 곧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되었기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앞다투어 산을 놓고 공방을 벌이게 되었고, 따라서 먼저 산을 소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산을 잘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

산성은 여러 가지 산을 지키는 방법 중 가장 진일보한 방법이었다. 산성을 쌓기 위해서는 성곽을 산에 쌓기 위한 건축술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축조된 성을 지키기 위한 전술이 연구되어야 하며, 이를 지원해 줄 여러 가지 도구들이 개발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성의 축조가 보편화되고 널리 지어지게 된 것은 이러한 제반 사항이 갖추어지고,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그 필요성도 높아진 조선 중기 이후이다.

가산산성도 조선시대에 왜란과 호란을 겪은 이후 국방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지리적으로 대구 및 영남 지방의 군사적 요충지로써 가산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00여 년에 걸쳐 축조된 산성이다. 가산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3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성은 1639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축조한 것이고, 영조 17년에 중성을, 숙종 26년에 외성을 각각 쌓아올렸다. 산성 내에는 군관청·군기고·보루(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구조물)·포루(아군의 대포 사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구조물)·장대(전쟁시 성내의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대장이 자리하는 곳) 등 군사시설을 설치하여 전란에 대비했으며, 천주사를 세워 승병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이 산성에 대피하기로 예정된 네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와 장비를 보관하여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가산산성 주차장에 차를 두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진남문을 통해 성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성벽과 문터가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위용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에 사찰이 많아 사적 답사를 겸해 가벼운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며 한티재에 올라가면 주변의 산세를 시원하게 구경할 수 있다. 또한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많은 음식점이 있어 일일 답사코스로 매우 훌륭하다.

▨ 가산산성에 대한 Q&A

▷가산산성은 어떤 역할을 할까?

산성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좀 더 효율적인 방어를 하고자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이다. 큰 전쟁이 일어나면 산 아래 마을에 있던 주민들은 필요한 물건을 챙겨 가까운 산성으로 도피하고, 마을의 장정들이 무장을 하여 지역 수장의 지휘 아래 방어전을 펼치게 된다. 산성 안에는 전시 동안에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작은 마을 형태의 취락과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농경지가 갖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산성 취락이라고 한다.

가산 산성은 해발 901m의 가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왜란과 호란을 겪은 후 국방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건설된 것이다.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인근 고을(주로 칠곡) 주민들이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피하고 방어하는 용도로 축조되었으나, 실제로 양란 이후 사용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영남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산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산성은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정상은 완만하고 능선의 경사는 가파른 고원과 같은 산지에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산산성처럼 지역의 방어 거점이 되는 산성은 영남 지방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영남 지방에 산성을 쌓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산지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창의 거열산성, 창녕의 화왕산성과 목마산성, 함양의 황석산성, 문경의 고모산성, 부산의 금정산성 등이 대표적인 산성이다.

▨ 함께 하면 좋은 체험학습 장소들

▷송림사 5층전탑

송림사는 칠곡에서 79번 국도를 따라 기성리 삼거리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가산 산성을 보기 전이나 후에 잠깐 휴식 겸 들러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송림사 내부의 5층 전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16.1m이다. 화강암 기단 위에 탑의 몸체는 사각형 및 정사각형 모양으로 2중으로 쌓아 올렸다. 1959년 해체 복원 때 나무 불상과 사리 장치 등이 발견되어 이는 보물 제325호로 지정, 현재 대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가산 바위

가산산성 주차장에서 위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 정도)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바위로, 마치 칼로 베어 다듬어 놓은 듯 평탄한 면이 약 80평 정도 크기로 펼쳐져 있다. 가산 바위의 표면에는 가늘고 길게 갈라진 틈이 수평과 수직으로 발달했는데, 이를 절리(joint)라고 하며 땅 속 깊은 곳에서 막대한 압력을 받고 있던 암석이 지표면의 침식으로 인해 압력이 제거되면서 부피가 점점 팽창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한티성지

팔공산 순환도로를 타고 한티재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다다를 즈음 오른편에 입구가 나타난다. 이곳은 원래 1801년(신유교난) 이후 충청도와 경기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문경과 사주를 거쳐 남하하다가 형성한 취락이었다. 이후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수백 명의 천주교 신도가 수난을 당하여 이곳으로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았다. 1868년 신정왕후의 친척인 조 가롤로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참살당하면서 오늘날 한티성지로 일컫게 된 것이다. 1970년 순교지로 지정되었고 조 가롤로를 비롯한 30여 기의 묘가 오솔길을 따라 산재해 있다.

▷한티재

대구는 지형적으로 분지이고 특히 북쪽에 팔공산과 남쪽에 앞산 등 큰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외부와의 교통로는 산을 넘는 고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티재는 칠곡을 통하여 외부로 나가는 교통로로써 도로가 매우 구불구불하여 옛 사람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다.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어 전망과 함께 쉬어 갈 수 있다.

강문철 (영남삶터탐구연구회, 경북고 교사)

참고자료 : 삶터탐구활동 길잡이 (대구남부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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