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장희 作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다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볕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乳房)이 달려있어

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

탐스러운 유방(乳房)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乳房)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哀求)의 정(情)이 눈물 겨웁고

주린 식욕(食慾)이 입을 벌이도다

이 무심한 식욕(食慾)

이 복스러운 유방(乳房)……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러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러지어다

이장희(李樟熙·1900~1929), 필명은 장희(章熙), 호는 고월(古月)이다. 아버지는 대구 갑부 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12남 9녀 중 셋째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평생 고독하게 살다가 만 29세에 대구 서성로 자택에서 음독자살하였다. 대구가 낳은 천재 시인의 생애를 단 세 문장으로 요약했지만, 행간에 묻힌 세세한 사연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보면, '청천의 유방'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시인이 따스한 봄날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볕으로 자라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쓸쓸한 심령과 그 심령의 식욕과 비유하여 시화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연 그렇다. 저 청천에 유방이 없다면 어떻게 이 지상에 찬란한 생명의 잔치가 벌어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창공에서 "불룩한 유방"을 발견한 시인의 눈, 지금 보아도 새롭기만 하다. 같은 시기 동년배들이 질척한 사적 감정에서 헤매고 있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 한국 현대시 최초의 이미지스트인 이장희 시인,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그 면모가 크게 알려져 있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