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풍·당뇨로 투병 남편 수발하는 최영애 씨

▲ 최영애(46·가운데) 씨가 대학 진학을 포기해 달라고 부탁한 첫째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을 집에서 간호하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c@msnet.co.kr
▲ 최영애(46·가운데) 씨가 대학 진학을 포기해 달라고 부탁한 첫째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을 집에서 간호하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c@msnet.co.kr

사랑하는 첫째 보거라.

퉁퉁 부은 눈을 숨긴 채 아무 말 없이 학교로 향하는 너의 뒷모습을 차마 쳐다볼 수 없더구나. 수백번 '미안하다'고 거듭하는 내 모습이 어찌 이리 처량한지. 현희야 엄마가 미안하다. 가슴에 못질 한 엄마를 지금 당장은 용서하지 말거라?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너의 꿈. 훗날 꼭 도와줄게. 수능시험 치는 것 잠시만 미룬다고 생각하자.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고 있기에 널 믿고 내린 결정이었다. 참고서 살 돈이 없어 친구들 책 동냥해 혼자 공부했던 너의 집념을 알지만 아빠를 살리기 위해 달리 방법이 없구나. 너 말고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밉구나. 어젯밤 아무 말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널 보며 엄만 가슴으로 울었단다. 대신 아빠 병 나으면 다시 공부 시작하자. 그 땐 엄마가 멋지게 뒷바라지 해줄게. 현희야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못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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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5일, 남편(46)이 일하던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남편이 짐을 옮기다 의식을 잃었다는 전화였습니다. 당뇨가 있었지만 일하다 쓰러질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지요. 뇌경색으로 중풍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의 몸 곳곳에서 당뇨로 인한 합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시력을 잃어갔고 신장이 점점 마비되어 버리더군요.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그렇게 남편은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순식간에 우리 가족을 에워싸버린 불행이란 놈은 그 뒤 찰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더군요. 시력 회복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지만 남편이 볼 수 있는 세상은 혈당이 높아지면 어김없이 암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복막투석에다 인슐린, 조혈제를 맞아야 하는 남편은 결국 세상과 단절되어 버렸지요.

아이들 학교 공납금과 회비가 밀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지난 3월 첫째 딸(18)과 둘째 딸(17) 앞으로 공납금 80만 원이 나왔습니다. 낼 형편이 아니었지요. 친지들로부터 빌린 돈이 1천만 원이나 됐거든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 기죽지 않고 꿋꿋이 학교를 잘 다녀줬지요.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계속 미룰 수만은 없더군요. 결국 전 큰딸에게 대학을 포기해달라는 못난 소리를 해버렸습니다. 엄마를 좀 도와달라고 했지요. 둘째 딸(17)과 셋째(12)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미뤄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지요. 차라리 큰소리라도 쳐줬으면 후련했으련만. 여린 가슴에 크나큰 상처만 남겨버렸습니다.

15일 오전 10시 대구 서구 비산동 최영애(46·여) 씨 집 한구석엔 약 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최 씨는 "남편이 한 끼에 15알씩 먹는다."고 했다. 남편은 시력이 나빠 혼자 투석을 할 수도, 밥을 챙겨 먹을 수도 없었다. 최 씨가 병수발을 시작하면서 가족들은 빚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최 씨는 둘째 딸 자율학습을 그만두게 했다고 했다. 자율학습비를 줄 수 없었던 최 씨가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남편의 병이 깊어갈수록 아이들의 희망도 뿌옇게 변해버리는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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