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주고불(趙州古佛)

중국 당나라 선종의 마지막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종심 선사는 나이 여든 무렵에 하북지방 조주의 관음원에 자리를 잡아 사람들에게 조주로 불린다. 말 잔등 위에서 자유로이 떠돌다 주지가 된 조주는 이후 40여 년 동안 단 하나의 가구도 들여 놓지 않고 시주를 부탁하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주의 옛 부처(趙州古佛)'로 너무 많이 알려진 터라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날 당의 왕자가 그를 찾아왔다.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맞이하는 조주에게 왕자는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됐고 다음날 휘하 장군을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장군이 찾아오자 조주는 방에서 내려와 응접했다. 왕자가 왔을 때는 방석에 앉은 채로 맞이하던 스승이 장군에 불과한 이에게는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 이상했던 제자가 이유를 물었다. "제일 가는 손님이 오면 자리에 앉은 채로 맞이하고 그 다음 손님이 오면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며 제일 하찮은 손님이 오면 문 앞까지 내려가 맞이할 것이다"라는 게 조주의 대답이었다.

부처의 길은 사회적 예절이나 지위와는 무관하며 가질수록 버려야 할 것도 많다는 점을 강조한 일화다. 스승 남전이 '도는 평상심'이라고 했듯 조주가 제자들에게 한 말과 행동 역시 늘상 분별과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도의 요체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에게 조주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침은 먹었느냐. 그럼 밥그릇 씻어야지"

법무부 장관이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신뢰사회 구현을 주제로 한 강연 말미에 폭행 사건으로 구속된 재벌그룹 회장과 관련, '父情(부정)이 기특하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한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법무부의 해명이 아니라도 장관의 말은 법과 원칙의 강조와 집단 따돌림에 곧잘 흥분하는 우리사회의 경향을 지적한 말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간이 보내는 斜視(사시)의 눈길은 힘있고 부유한 사람에 대한 다른 법적용을 경계함과 다르지 않다.

며칠 후면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이다. 年年歲歲(연년세세) 돌아오는 날이지만 석가모니 부처가 이 땅에 온 까닭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하나의 답이라면 분별하고 다르게 대우하는 일은 평등과 평화의, 부처님 오신 의미와는 다르지 않을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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