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 벌어진 일이라면 기억도 할 법 하건만 단 한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철이 없어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10년이 지난 지금, 17살 혜진이는 14살난 남동생 성호와 함께 고아원에 살고 있다.
만 10년 전인 1997년 4월 29일 포항에서 대구로 오던 국도변에서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구에서 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내다팔 물건을 떼러 포항 새벽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작스레 뛰어든 자전거를 피하려고 급하게 핸들을 꺾었고, 자동차는 길 옆 담벼락을 들이받았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중상을 입은 아버지는 석달 만에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저 팔이나 다리를 다친 정도가 아니라 정신장애가 왔다. 의식이 맑다가도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도 기억을 못하고,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경황이 없던 가족들은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했다.
혼자서는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던 어머니는 두 남매를 고아원으로 보냈다. 고아원 생활을 묻는 기자에게 혜진이는 그저 고개만 떨구었다. 대화 도중 혜진이 언니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24살이 된 혜란이. 현재 고시원에서 혼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단다. 혜란이는 오른 손과 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선천성 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우를 보호하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혜란이는 18살이 되던 해 고아원을 나왔고, 종교시설 등을 전전하다가 얼마 전 방값이 싼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정신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일정 기간 치료를 받은 뒤 아버지는 얼마 전 마련한 8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로 옮겨갈 예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데다 가끔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기 때문에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도 떨어져 살아야 한다. 직업 군인이던 아버지의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몇 해 전 급기야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혼해 다른 가정을 꾸려서 대구에 살고 있다. 아이들과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여의치 않다. 어머니에게는 3살 난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풍요롭지는 않았더라도 두 딸과 막내 아들이 함께 살던 살갑던 한 가정은 교통사고로 철저히 부서졌다. 하지만 혜진이와 성호에게는 다시 꿈이 생겼다. 7년 가량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조만간 집이 생길 예정이다. 혜진이 큰아버지가 이달 중에 아이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한 것.
명절이나 주말이면 종종 찾아오던 큰집. 고아원이 힘들더라도 꿋꿋하게 견디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말이 없던 성호가 큰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정말 돌아가기 싫어요." 아이가 행여 기죽을새라 큰어머니 박정숙(47)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큰어머니한테 구박받을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함께 살래?" 성호는 냉큼 답했다. "구박받아도 좋으니까 가족이랑 함께 살래요." 다행히 혜진이와 성호는 사촌들과도 사이가 좋다. 하지만 준비할 것도 많다. 다행이 방은 세 칸이 있어 아이들이 따로 지낼 수 있지만 학원도 보내야 하고, 컴퓨터며 가구도 장만해야 한다. 몇 해전 사업에 크게 실패한 큰아버지네 형편도 넉넉치 않은 편. 그나마 큰어머니가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 나아졌다. "고아원에 있으면 가끔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너무 슬퍼져요. 남들은 운동회때 가족들이 둘러앉아 맛난 음식을 먹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호텔리어를 꿈꾸는 혜진이의 소원을 물었다. "큰어머니가 우리를 사촌들이랑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더 이뻐하지도, 더 미워하지도 말고. 잘 키워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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