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형 유통업체 슈퍼 진출…동네슈퍼 '노심초사'

공룡의 욕심-슈퍼의 눈물

▲ 한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 슈퍼마켓 시장 진출을 위해 기존 중형 슈퍼마켓을 물색하고 있어 슈퍼마켓 사장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한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 슈퍼마켓 시장 진출을 위해 기존 중형 슈퍼마켓을 물색하고 있어 슈퍼마켓 사장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한 대형유통업체가 지역의 슈퍼마켓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기존 매장을 물색하는 등 지역에서도 대형유통업체의 슈퍼마켓 진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역 슈퍼마켓 업계는 브랜드 파워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유통업체들의 진출이 가시화하면 동네 슈퍼마켓 시장이 급속도로 잠식당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미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형마트로 큰 상처를 입은 동네 슈퍼마켓 사장은 슈퍼마켓시장까지 장악하려는 대형 유통업체의 또 다른 회오리바람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공룡들, 이번엔 지역 슈퍼마켓 눈독

대구 동구 방촌동에서 150평 규모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48) 사장은 지난해 12월 한 부동산 업자를 만났다. 그 부동산업자는 한 대형 유통업체에서 지역의 몇 곳을 정해 중·대형 슈퍼마켓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데 팔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릿세로 3억 원을 제시했다. 이 사장은 "아무리 돈이 좋지만 대형 마트가 동네까지 진출하면 개인 매장들은 어떡하느냐."며 일거에 거절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4월 초 건물주로부터 "월 임대료를 900만 원 준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월 600만 원에 임대하고 있는 이 사장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 사장이 의구심을 갖고 알아본 결과 월 900만 원을 제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대형마트의 위임을 받은 부동산 업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장은 "어쩔 수 없이 내년 3월 재계약을 할 때는 월 임대료를 높여 주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북구 침산동의 300평 규모의 대형 슈퍼마켓을 소유하고 있는 한 사장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지난해 12월쯤 한 대형마트의 위임을 받은 부동산 업자 2명이 찾아와 5억 원을 제시하며 매장을 팔라고 권유하더라는 것. 사장은 "한 대형마트에서 대구에서 장사가 잘 되는 중대형 슈퍼마켓을 골라 매입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서울과 부산 등지에는 영업을 하고 있지만 대구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대형 마트 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역 슈퍼마켓 출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사실상 슈퍼마켓 진출 시도를 인정했다.

◆전국은 지금 공룡들의 슈퍼마켓 출점 경쟁

이미 전국적으로 대형 유통업체 간 슈퍼마켓 출점 경쟁은 치열하다. 현재 슈퍼마켓 시장에 진출한 대형 유통업체는 홈플러스의 슈퍼 익스프레스와 롯데슈퍼, GS슈퍼 등이다. 슈퍼 익스프레스는 현재 서울 등 수도권과 부산 등지에 42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고 올해 28개를 추가로 출점할 계획이다. 롯데슈퍼도 전국적으로 53개 점포를 가지고 있고 올해 30곳가량을 늘린다. 또 전국에 85개 매장을 보유해 슈퍼마켓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GS슈퍼도 올해 10개가량을 더 출점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최근엔 유통업체 1위인 이마트도 슈퍼마켓 출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슈퍼마켓 사업 출범 초기에는 500여 평 이상의 SSM(Super-SuperMarket·대형 슈퍼마켓)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차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엔 200평가량의 중형 슈퍼마켓 시장 진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슈퍼마켓 업계에서는 대형 마트나 대형 슈퍼마켓의 경우 부지 선정이나 허가, 지역 여론 등에 어려움이 있는 반면 중형 슈퍼마켓은 기존 동네 매장을 사들여 간판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동네 슈퍼마켓 다 죽일라

대형 유통업체들의 슈퍼마켓 진출에 지역 슈퍼마켓 사장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상품의 다양성, 기획력, 홍보력 등 모든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 특히 100평 이하의 동네 슈퍼마켓에겐 치명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 슈퍼마켓 사장은 "동네 슈퍼마켓들이 대형마트와 맞서기 위해 구멍가게에서 150평 이상 규모를 키우고 연합을 하는 등 발버둥을 치는 상황에서 대형마트가 동네 슈퍼마켓까지 침범하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 등장으로 기존 동네 슈퍼마켓이 50% 이상 위축된 상황에서 또다시 대형 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 시장에 진출하면 기존 작은 동네 슈퍼마켓들은 전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대형유통업체들은 일반 슈퍼마켓과는 달리 상도를 지키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 잠식을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이 예사"라며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생기면 인근 슈퍼마켓은 매출 급감은 물론, 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네 슈퍼마켓이 몰락하고 나면 다시금 소비자들은 가격 상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외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지역에 17곳의 대형 마트가 성업 중이며 이로 인해 한 해 역외 유출이 약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슈퍼마켓 진출이 본격화하면 자금의 역외 유출 급증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대구시는 이에 대해 대형 마트는 다양한 억제책이 마련된 상황이지만 슈퍼마켓 사업에 대해서는 행정 지도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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