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햇살은 따뜻하고 흙은 부드럽기만 하다. 아이들과 함께 국토의 맨살을 밟으면서 명작의 무대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봄이 다 가기 전에 소설 한 권 들고 명작의 고향을 찾아 국토를 순례하는 나그네가 되어 보자.
권정생 씨의 소설 '몽실언니'는 비참과 불행의 연속이지만 결국 해피엔딩이다. '몽실언니'의 배경은 어느 특정한 마을과 산천이라기보다는 권정생 씨의 생애이다. 그의 한평생의 가난과 외로움은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몽실언니'의 무대인 안동을 찾아간 지난 18일 권정생 씨는 하루 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몽실언니 곁으로 떠난 것이다.
몽실이는 거지로서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봄이었다. 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어린 몽실이가 어른들의 언니 노릇을 해낸다. 소설 속에서 몽실이는 살강마을에 살다가 단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편을 바꾸는 어머니를 따라 댓골마을로 간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인 살강마을과 댓골마을은 댐이 생기면서 수몰됐다. 몽실이가 어머니 밀양댁을 따라서 걸었던 살강마을과 댓골마을은 물로 가로막혀 있다. 댓골마을에서 김 씨 아버지가 밀양댁과 몽실이를 미는 바람에 몽실이는 마루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된다.
권정생 씨는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노무자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릿고개가 고통스러웠던 1946년 봄에 외가가 있던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어렸을 때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를 했고 여러 가게의 점원 노릇을 했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으로 온 몸이 망가졌다.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했다. 권정생 씨의 삶은 몽실이에게 그대로 투영됐다.
안내를 도왔던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 이장 장휘수(44) 씨는 "소설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얘기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예전 살강마을은 살강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경치가 좋았고 골이 깊어 살쾡이 등 짐승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예전 댓골에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고 서당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다.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온다. 살강마을과 댓골마을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식당은 여름 한철 장사만 하고 관광객은 거의 없다. 농가가 있지만 지금은 다 떠나고 사람은 살지 않는다고 한다.
물 건너 보이는 것은 소나무와 참나무뿐이다. "언니…몽실언니…" 소설의 난남처럼 입속말로 불러봤지만 세찬 바람만이 뺨을 때린다.
몽실언니의 지리적 배경인 살강마을과 댓골마을을 지나 권정생 씨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권정생 씨는 1968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시골 예배당 문간방에 정착한 뒤 '종지기'로 외롭게 살았다. 주인을 잃은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흙집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주인잃은 세간이 곳곳에서 뒹굴고 있었다. 밥통 안에는 며칠 전 했을 밥이 쉬어가고 있었다. 문 앞 댓돌 위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백합꽃이 놓여있었다. 한 방송사가 이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의 하지않았다는 권정생 씨에게 이방인은 귀찮기만 했을 것이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가는 길=안동에서 진보로 가다가 임하댐 보조댐에서 좌회전하면 외길이 이어진다. 재를 넘어 첫 동네에서 좌회전해서 계속 들어가면 흙길이 나타난다. 길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승용차는 운행이 어렵다. 양봉농가를 지나면 식당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물 건너로 바로 보이는 곳이 살강마을이고 왼쪽이 댓골마을이다. 권정생 씨의 집은 남안동 IC 입구에 위치해 있다.
▶맛집=안동에서 진보방향으로 가다 보면 임하댐 주변에 향토사랑이라는 식당이 있다. 쌈밥정식이 유명하다. 각종 야채와 된장을 볶은 쌈장이 별미이며, 싱싱하고 푸짐한 야채가 입맛을 돋운다. 1인분 5천 원. 한방오리고추장불고기와 한방목살고추장불고기도 먹을 만하다. 054)8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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