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만약 나였더라면?

방송인 백지연 씨가 정직하기 위해서 거액의 CF를 거절했다 하여 화제다. 굴지의 기업 CF 촬영을 하던 그녀가 끝내 촬영을 중단한 이유는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저도 이 상품을 구입했습니다"라는 광고 멘트에 대해 실제로 그 상품을 산 적 없는데 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계자가 CF 촬영 후 상품 구입 방안 등을 절충안으로 제시했지만 "CF를 찍기 전에 구입한 것과 찍은 후 구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재차 수정을 요청했다. 결국 양측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그녀 쪽에서 CF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설령 광고 카피 그대로 했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유명 광고모델 대다수가 관행처럼 해온 터 아닌가. 그런데도 그녀는 거부했다. 한 치의 거짓마저 허용하지 않으려는 엄격한 잣대가 그래서 놀랍고도 신선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국수가락 뽑아내듯 거짓말을 술술 잘도 하는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마따나 '천지삐까리'인 세상이다. 거짓말 사기에 피멍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예전에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이야)'라는 유행어가 있더니 이젠 '민나 우소츠키데스(모두가 거짓말쟁이야)'를 하나 더 보태야 할 판이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3회 정도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유형은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길이 막혔다고 둘러대거나 외박 핑계로 문상을 들먹이는 식이다.

물론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엔 869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거짓말의 종류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의식적인 거짓말(사실이 아닌 줄 본인이 아는), 어린아이의 무의식적 거짓말(상상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는)도 있고,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적했듯 악의적 거짓말, 利他的(이타적)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거짓말엔 색깔도 있다. 새빨간 거짓말, 검은 거짓말, 누런 거짓말, 하얀 거짓말…. 빨갛고 검은 거짓말은 악의적 거짓말, 누런 거짓말은 황당한 거짓말, 반면 하얀 거짓말은 용납될 수 있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간 주인공이 어린 아들에게 그 비참한 상황을 신나는 게임이라고 거짓말하지만 이 거짓말이 결국 아들을 구하게 만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