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손녀와 근이양증 딸 돌보는 70대 노모

"혜린아, 내가 죽더라도 수족 못쓰는 네 엄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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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전희섬(여·51) 씨가 엄마가 살고 있는 중구 한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전 씨의 엄마가 안쓰런 눈길로 딸을 바라보고 있다.정우용기자 vin@msnet.co.kr

-할머니가 손녀에게 남기는 말

혜진아, 할미다. "이젠 다 컸다."며 새벽바람 맞으며 일하러 가는 너를 볼 때마다 안쓰러움에 할미 가슴은 찢어진단다. 집 나서는 네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 할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할미는 다 안다. 도서관 간다고 하지만 신문 배달을 한다는 사실을 어찌 모를 수 있겠니. 배불리 먹여 보내야 하는데 오늘도 복지관에서 타온 밥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 할미라도 빨리 저 세상으로 가야 한 입이라도 줄텐데···.

네 어미 두고 먼저 죽을 수 없어 살아온 인생이 칠십을 넘겨버렸네. 내 자식 건사 못해 결국 너에게까지 죄를 짓는구나. 너만은 박복한 이 할미와 네 어미 인생을 닮지 않아야 할텐데, 우리가 네 앞길을 막아버리는구나. 혜진아 이 할미 죽으면 수족 못 쓰는 네 어미를 부탁해도 되겠니. 아무것도 해 줄 것 없는 늙은 할미의 가난한 마음이지만 언제 또다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해 두마. 혜진아 사랑한다. 정말 미안하구나.

'남편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을 이겨내려 무던히도 애썼던 칠십 평생이었습니다. 스물셋에 낳은 첫째 딸 희섬(51)이는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지요. 이유없이 열이 오르내리기도 했고 끊임없는 근육통이 애를 못살게 굴었지요.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땐 서로 의지하며 병원도 데려가고 음식 조절도 하며 잘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 행복은 참으로 짧더군요. 폐결핵이었던 남편은 아이가 열두 살 되던 해, 피를 토하며 결국 세상을 등졌습니다. 혼자가 된 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막걸리 공장과 섬유공장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힘겹게 삶의 끈을 이어갔지요. 어렵게 모은 돈은 고스란히 희섬이의 병원비로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희섬이가 건실한 남편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지켜볼 수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도 통증에 시달렸던 희섬이는 근육이 점점 사라져 없어지는 '근이양증'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게 됐지요. 그 뒤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생계 걱정에 아픈 딸까지 부양해야했던 사위는 술을 마시면 아픈 딸아이를 때렸고 손녀에게까지 가차없이 매질을 했습니다.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 두 손으로 코를 부여잡고 "할머니, 할머니, 코가 부서졌나봐."하며 폴짝폴짝 뛰며 눈물을 흘리던 바로 그날, 희섬이는 열 넷이었던 혜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 날의 핏빛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혜진이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매고 있지요. 지난해엔 부러진 코뼈가 휘어 재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는 혜진이가 대학을 포기하도록 했지요.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2년이란 시간을 돈벌이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하나 그나마 허드렛일로 번 돈도 제 어미 병원비로 다 들어가버렸지요. "좋은 곳에 취직해 엄마랑 할머니 병원비 대 주고 싶다."는 혜진이에게 대학은 다가갈 수 없는 아득한 산입니다.

22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전희섬 씨는 점점 줄어드는 근육량 만큼이나 모진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매일 진통제를 먹으며 삶을 연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체 병원을 가지 않는다. 혜진이가 버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 대학 등록금에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통증으로 말조차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그에겐 자신의 생명보다 딸의 장래가 더 중요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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