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서벌 作 '낚시 心書'

낚시 心書

서 벌

냇가에 나와 앉아 낚시를 드린 날은

하늘도 한 가득히 못으로 고여 내려

임 생각 올올한 갈래 몇 천 가닥 낚시인가.

불현듯 찌가 떨어

잡아채는 잠깐 사이

비늘빛 눈앞 가려

아득한 천지간을…….

임이여

그렇게 들면

내 마음은 대바구니.

저승도 내 먼저 가 설레는 물무늬로

이제나 저제나 하며 이리 앉아 기다리리.

그윽이 꽃수레 몰아 목 넘어 올 그때까지.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랑 시는 절절함이 생명입니다. 그저 숭늉에 탄 커피 같아서는 절실한 울림을 기대하기 어렵지요. 정서와 가락이 뜨겁고 서늘하게 맞물릴 때 뜨겁고 서늘한 전율이 전신을 휘감아 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한료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올올이 풀려 나온 임 생각에 왼 마음이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종잡지 못할 생각의 갈피마다 낚싯바늘이 걸리는데요. 어떡하면 임 마음 내 마음이 온전히 포개어지나, 온통 그 생각뿐이지요. 찌가 떨릴 적마다 정작 눈앞에 번득이는 것은 고기가 아니라 임의 모습입니다. 잡아채는 절정의 희열이 사랑의 전류로 바뀌면서 질정 못할 안타까움이 연신 대바구닐 튀어 오릅니다.

셋째 수는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갈망입니다. 못다 푼 낚싯줄을 저승 쪽으로 넘겨보지만, 설레는 물무늬는 여전합니다. '저승도 내 먼저 가… 이리 앉아 기다리리'. - 그 무한정의 기다림이 곧 무한정의 사랑인 것을. 이제나 저제나 하던 꽃수레가 목 넘어 올 때의 광경은 참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환한 감격이지요.

부처님 오신 날, 인연의 향기가 오롯한 시조 한 편을 가난한 마음의 등불로 답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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