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약탈하고, 물질을 낭비하고, 물질을 우상으로 떠받들던 세상도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위원회(IPCC)'에서 기후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시간이 앞으로 8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발표가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의 소생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종류의 '생산'은 '파괴'에 다름 아니며, '성장'은 '파멸'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건 먼 나라 일도 아니고 전문가나 관료들의 문제도 아니다. 전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또다시 '차이 없는 반복'을 되풀이할 여유조차 없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미 오래 전부터 마냥 그곳을 가리키고 있는 책이 있다. '우리들의 하느님'. 마치 '강아지똥'이 거름되어 환생한 민들레처럼 이 책은 소박하고 친근하다. 그러나 책갈피 속의 말씀들은 유난히 맑고 차다. 두레박으로 막 퍼 올린 우물물 같다. 미지근한 정신이 확 깨어난다. 그 물줄기는 우리가 잊고 있는 아득한 근원인 어머니, 자연, 푸르고 깊은 심연에 닿아 있다.
"우리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이 없어야 한다. 경제적 후진만으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생존경쟁'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어도 되는 건 스포츠 경기에나 있지 살아가는 목숨들은 함께 살아야만 한다."
무욕과 겸손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저자는 '하느님'을 만났다. 기독교가 있든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존재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섭리는 자연의 섭리였다.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사는 것이 길이며 진리이고 사랑임을 깨달았다. 깨달음의 말씀들은 별빛처럼 성성했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한 기도를 예수께선 언제 가르쳐 주었던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절대 하느님 축복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모든 물질은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각자의 몫이 골고루 나뉘어졌을 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이니까."
사람이라고 특별한 생명인 것은 아니다. 사람도 자연이다. 그러나 동족과 동식물을 약탈하고 자신의 터전까지 더럽히는 가장 불명예스런 자연이다. 자연을 자연다워지게 하려면 먼저 사람을 사람다워지게 해야 한다. '무공해'는 먼저 사람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그것을 일깨운다. 마치 혼미한 잠을 깨우는 종소리처럼.
일제 식민지, 해방, 6. 25를 겪은 세대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저자도 파란만장한 생의 격랑을 겪었다. 굶주림. 찢어져버린 가족들. 평생의 동반자이기도 한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았다. 병든 몸으로 유랑을 하며 떠돌다 어느 마을 교회 문간방에 정착했던 그는 날마다 새벽별을 바라보며 종을 쳤다. 지난 17일, 진정한 공생과 평화적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던 권정생 선생께서 기어이 영면하셨다. '우리들의 하늘'에서 밝은 별 하나가 또 지고 말았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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