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인삼밭 습격사건

"하나! 둘! 하나! 둘! 오른발에 인삼! 왼발에 국력!" 계란반숙도 충분할 뙤약볕 아래 완전무장 군인이 뛰고 있습니다. "인삼, 체력", "체력, 국력" 구릿빛 살결과 우렁찬 구호, 최강의 용사입니다.

1991년, 냉전와해의 불똥 때문에 연일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됩니다. 부대전체가 이동을 거듭합니다. 본대를 떠나 방황한지 보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배식마저 불규칙해진 상황, 장기매복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야간훈련이 새벽으로,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걸렸습니다. 완벽한 은폐,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이동명령, 또 다른 작전이 전개됩니다. 야전막사를 짓고, 각종 장비들을 배치합니다. 수 십 문의 대포와 차량들이 도열되고 전부대원이 사주경계를 합니다. 작전완료. 바로 그때 살벌한 군세와 철통경계를 뚫은 적군이 단신으로 돌진합니다. 삐딱하게 쓴 밀짚모자에 허름한 삼베 옷, 무기라고는 삽 한 자루뿐인 그는 순식간에 대대장을 제압합니다.

"야 이놈아!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장난치게 놔둘래!" 애고~, 국가안보가 장난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멱살 잡힌 대대장은 엉망으로 망가집니다. 휘두르던 지휘봉은 저 멀리 날아가고, 손 베일 듯 각 잡힌 군복은 구겨져 쭈글쭈글합니다.

야간매복, 공교롭게도 인삼밭이었습니다. 긴 매복시간동안 체력보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뿌리 잘린 인삼 싹들을 감쪽같이 원위치 시켰지만 철수 전에 시들어버린 것입니다. 긴급명령이 하달됩니다. "범인을 색출하라"

대대장 예하의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준위, 상사, 중사, 하사들의 머리가 하얗게 탈색됩니다. 한 여름 땡볕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범인색출? 희생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아침반찬에 올라온 도라지무침, 모두가 공범이었던 것입니다. 군인정신은 희생정신, 짬밥에 대한 책임, 김 병장님 미안합니데이~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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