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도 '기자'] 영남 문인화 맥을 좇아

이번 주 '나도 기자'의 주인공 사공홍주(49.호는 현동) 씨는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미술학석사와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문인화가입니다. 경북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으며 8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현재 한국문인화협회 대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늘 공모전이든 개인 전시회이든 문인화를 볼 때마다 영남화풍보다 호남화풍이 주류를 이루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중 이번 기회를 빌려 '영남문인화의 화풍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습니다.

#대구는 문인화의 본고장

흔히 대구를 지칭해서 문화 예술의 도시라고 말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대구의 문화 인구는 타 지역에 비해 우세하고 수준도 높지만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문인화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문인화는 영남과 호남의 화풍(畵風)으로 나누어진다. 영남 화풍은 대구를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화풍이다. 이곳 대구의 화풍은 선이 굵고 강하며, 사의성(寫意性)을 중시하는 서법(書法)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호남 화풍은 대체로 선이 가늘고 섬세하며, 사실성(寫實性)에 근거함으로써 화법(畵法)에 가까운 그림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둘은 모두 제각기 장점이 있지만 문인화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곳 대구의 화풍이 더 정통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구의 문인화풍은 점점 축소되어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이 점에 대해 문인화에 대한 자긍심으로 석재 서병오 선생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대구화랑 김항회(54) 대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지역성이 약화된 탓도 있겠으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에서 모든 문화의 보급과 생산을 독점해 버린 영향이 무엇보다도 크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인화가들은 대부분 호남 화풍을 배운 작가들이 많고 이들이 모든 전시나 기획을 진행함으로써 이제는 전국이 하나의 화풍으로 획일화 되어 가는 경향이 짙은데 이 점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지역 작가들의 반성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단체장들의 체계적인 지원과 사업 기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문인화의 계보 석재, 죽농으로 이어져

근대 이후 이곳 대구 지역은 석재 서병오 선생과 죽농 서동균 선생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전국 서화계를 주도해왔다. 특히 석재 선생은 1922년 '교남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해마다 3~4회의 시회를 개최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영남 서화인들의 친목과 교류를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대구는 한 때 한국서화의 중심지라 불려지기도 했다. 1935년 석재 선생이 작고하자, 죽농 선생이 이를 계승하여 회를 이끌었고, 광복 후에는 그 명칭을 '영남서화회'로 개칭한 후, 그 산하에 '영남서화원'을 두어 후진 양성에 힘써 왔다.

하지만 70~80년대의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전통문화와 예술은 더 이상 계승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경제 성장이나 그 성장을 통한 삶의 서구화만이 유일한 목표이고, 서양을 따라 그들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답습하는 것이 마치 유일한 정도(正道)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했기에 전통 문화와 예술은 무가치한 것이고 하루 빨리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됨으로써, 서화인들의 활동 역시 침체되고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사회 구조, 또는 서양의 문화만이 유일한 가치로써 인정되는 사회의 필연적이면서도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지역에서 30년 넘게 문인화를 수집하고 사비를 들여 화첩을 만들어 보급에 힘써온 대구화랑 김 대표는 "대구에는 추사 이래 3절이라 칭하고 싶은 석재 서병오 선생을 비롯해 죽농 선생 등 시, 서, 화에 능한 많은 문인화가를 배출했지만 그런 선배 작품을 오히려 호남 지역에서 더 대접 받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 기관에서 문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여건이 허락 된다면 대구에도 문인화 박물관을 만들어 영남 화풍을 길이길이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인화에 대한 멋과 맛을 느끼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 높은 문인화 강좌 절실히 필요

처음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확대 되었지만, 이제는 대구를 비롯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문화강좌가 개설된다.

문인화 강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변확대도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문인화를 공부하는 사람의 양적인 면은 늘어났지만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예전에 비해 낙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강좌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의의 내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강좌에서 지도하는 강사의 자격을 보면, 각종 공모전에 입선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강의를 맡을 수 있다.

공모전에서 입선한 사람이면 누구나 강사로 채용을 하여 다른 사람을 지도한다는 것은 영남문인화를 보급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오히려 영남문인화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문인화의 장점을 흡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먼저 우리 지역의 문인화적 특성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철저한 자기인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분별한 수용은 결국 지역 문인화의 상실을 초래할 것이며, 또한 새로운 문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갈 소중한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 문인화를 배우는 사람들

"문인화를 배우니 무엇보다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요. 늘 화려한 것만 보다가 단순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묵향에 흠뻑 빠져 있다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 시간. 시내 한 중심가에 있는 도심 사찰 (재)일붕선교종 도광사 법당에서 문인화를 배우고 있는 신정숙(27, 학원강사) 씨는 배운 지 두 달 남짓 됐다는데 붓놀림이 제법 여유로워 보인다. 이곳에서 문인화를 배우는 연령층은 대학생을 비롯해 젊은 층이 절반을 넘는다. 이제 문인화는 나이 든 사람들이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는 송화진(25, 계대 시각디자인학과 4년) 씨는 "문인화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단색의 묘미가 깊은 것 같다"면서 "문인화는 먹 한 가지로 여러 가지를 표현하고 농담 조절을 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장르의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인화는 무엇보다 마음의 수행을 함께 할 수 있어 취미로 문인화를 배우면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큰 부담 없이 배울 수 있고 오랜 기간을 거치지 않아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서 취미로 권할 만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