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수용의 현장리포트]부동산 경매

호기심도 좋고 대박의 꿈도 좋다. 누구나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봤을 만한 부동산 경매. 최근 들어 대학교 평생교육원이나 경매정보업체 특강 등을 통한 경매 교육이 활성화하면서 부동산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 경매는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영역에 속하고, 경매 전문가나 브로커들이 활개치는 삭막하고 살벌한 무림이나 마찬가지다.

적(?)을 알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적진에 뛰어들어 맞부딪히는 게 최선의 길. 지난 16일 오전 10시 대구 경매법원을 찾았다. 당초 대구에는 대구본원에서만 경매가 이뤄졌지만 최근 서부지원이 문을 열면서 일이 나뉘었다. 현재 대구본원에는 경매 13계, 서부지원에는 3계가 업무를 맡고 있다. 경매법정은 대구지법 오른편 건물 지하 2층에 자리잡고 있다. 법원으로 가는 오르막길 대신 오른편 민원인 주차장을 통하면 지상층에 해당한다. 경매(정확히 말하자면 입찰 개시)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지만 아직 법원 주변은 한산하기만 하다. 취재 협조를 구하기 위해 법정 바로 옆에 있는 집행관 사무실을 찾았다. 사진 촬영 여부를 묻자 관계자는 "경매 법정도 일반 법정과 마찬가지로 사진 촬영은 일체 금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자칫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입찰은 오전 10시부터 11시10분까지 진행된다. 경매에 참여하려면 사전 신청을 하거나 특별한 자격이 필요할 것으로 짐작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심하게 말하자면 길 가다가도 "오늘 경매나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면 그냥 경매 법정에 들어가 필요한 서류만 작성하면 끝이다. 이런 사실도 경매 법정에 가서야 처음 알게 됐다. 법정 앞 로비 입구에는 당일 경매 물건의 정보를 담은 정보지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현재 대구에서 전문적으로 경매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8곳. 이들 중 상당수가 정보지를 발행한다. 원래 정보지 구독(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상세자료 검색)은 유료 회원만 가능하다. 하지만 당일 진행되는 경매 물건에 대한 정보는 사실 '정보 가치'를 거의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어서 로비에 놓인 정보지는 누구나 가져가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경매 물건에 대한 입찰공고(경매 처분될 건물이나 대지 등 부동산이 어느 날짜에 경매처리되는 지를 알려주는 것)는 경매일 2주 전에 일간지나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공고를 보고 관심있는 물건에 대한 충분한 자료 수집을 해야 한다. 앞서 길 가다가도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만큼 참여에 제한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실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경매에 참여하는 것은 눈 가리고 대로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매 물건이 있는 현장 답사도 해야 하고, 인근 부동산 시세도 조사해야 하며 등기부등본 열람 등 해당 물건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전부 따져봐야 한다. 또 입찰이 있기 1주일 전부터 경매 법원이 있는 건물 2층에 자리잡은 민사집행과에서 해당 물건에 대해 법원이 조사한 관련 서류를 비치해두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런 시간을 주기 위해서 공고 후 2주 뒤에 입찰을 하는 것이다. 경매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이같은 '권리분석'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적 제약이나 정보 접근성 때문에 전문업체의 경매정보를 구매하는 것이다. 권리분석이 끝났다면 입찰 준비는 90% 이상 끝난 셈.

경매법정(입찰법정) 입구 오른쪽에는 당일 처리되는 경매 물건 목록이 게시돼 있다. 입찰공고 이후 2주 사이에도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게시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법정 안에 들어가면 방청석이 있고, 경매절차를 진행하는 집행관들이 보인다. 집행관 앞에는 당일 처리될 물건의 사진, 위치도, 등기부등본, 채무관계 등을 알려주는 공고철이 있다. 이미 사전 정보를 입수하며 '권리분석'을 끝냈지만 한번 더 확인하라는 의미다. 그 옆에서 입찰봉투를 나눠준다. 입찰봉투에는 기일입찰표, 입찰보증금봉투가 들어있다. 방청석 오른편에 있는 입찰금 기입대에서 정해진 양식에 따라 기일입찰표를 작성하고, 입찰가격의 통상 10%에 해당하는 입찰보증금을 봉투에 넣은 뒤 법정내 직원에게 주면 된다. 입찰봉투를 제시할 때 봉투 윗부분에 붙어있는 입찰자용 수취증을 따로 떼서 보관해야 한다. 만약 낙찰받지 못했을 경우, 수취증을 제시해야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입찰보증금은 수표 한 장으로 준비하면 편하다.

이렇게 되면 입찰은 끝난다. 나머지는 11시 10분, 입찰 마감때까지 기다린 뒤 개찰을 지켜보면 된다. 경매법정은 10시 30분을 넘이서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20대 여성부터 아이를 업은 주부,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한 30대 주부는 "아파트를 비교적 싸게 장만할 까 싶어 왔는데 자신이 없다."고 했고, 중년 남성은 "한 건만 제대로 낙찰받아도 주식이나 펀드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아서 자주 찾는 편"이라고 했다.

개찰 시간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늘 매각되는 경매물건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교환한다. 법상 경매 물건에 대한 알선 및 소개를 통해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변호사, 공인중개사(올해부터)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흔히 '경매 브로커'로 불리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돈이 될만한 특정 경매물건을 미리 점찍어 두고 다른 사람들이 입찰을 못하도록 법정 입구에서 으름짱을 놓거나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수년 전 이야기일 뿐이다. 브로커들은 초보자를 상대로 입찰을 도와주고, 아울러 낙찰 이후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4면에서 자세히 소개)를 해결해 주고 수고비를 받는다.

11시 10분, 입찰 마감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린다. 응찰자(입찰 참여자)들이 방청석에 앉아있는 가운데 집행관이 개찰 절차 및 주의점을 알려준다. 대부분 개찰은 응찰자가 많은 물건부터 시작한다. 이날 응찰자는 약 80명. 전체 물건 33건 중 13건만 응찰자가 있었고 나머지는 단 한 명의 응찰자도 없었다. 나머지 물건은 자연 유찰돼 다음 경매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첫 개찰 물건은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24평형 아파트. 지난 4월 한 차례 유찰된 적이 있으며, 감정평가액은 1억 원, 최저(시작)가는 7천만 원이다. 모두 17명이 응찰했으며, 응찰자 모두 집행관 앞에 서서 개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집행관은 "최고가 낙찰자와 차점자간 금액 차이가 20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물건의 최종 낙찰가는 9천 500여만 원.

낙찰자는 환한 웃음을 짓고, 나머지 16명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다음 개찰된 물건은 경산시 중방동에 있는 아파트. 23평형으로 감정평가액은 8천 500만 원이지만 최종 낙찰가는 7천800여만 원. 차점자와의 차이는 불과 21만 원이다. 낙찰자는 일반 매매과정에 비춰볼 때 계약자와 마찬가지다. 입찰보증금은 계약금인 셈. 소정의 절차를 밟은 뒤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이전하면 경매 물건의 완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낙찰받지 못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입찰자용 수취증을 제시하고 앞서 입찰봉투에 함께 넣었던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으면 된다. 이날 응찰자가 있었던 13건에 대한 경매 절차는 12시쯤 모두 끝났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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