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밀양

영화 '밀양'은 좀 복잡한 영화이다. 복잡함의 원인은 단순하다. 영화 '밀양'에 대해 배우 전도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밀양은 사람살이에 관한 작품이에요."라고 말이다. 전도연의 대답은 '밀양'이 지닌 복잡함에 대한 답이 될 만하다. 복잡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삶이 복잡하기에 삶의 근원을 조금이라도 잘 드러내 보이면 그런 작품들은 복잡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대개 좋은 영화라고 알려진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밀양'은 남편이 죽은 후 그의 고향으로 내려온 모자(母子)로부터 시작한다. 여자는 밀양근처에서 길을 잃고 묻는다. "밀양이 어떤 뜻인지 아세요?"라고. 이에 마중나온 카센터 남자는 이렇게 답한다. "뭐 사람사는 데야 다 똑같지 않습니까, 다 그렇지요." 이에 여자는 밀양의 속뜻을 말한다. "밀양은 비밀 밀(密)에 볕 양(陽), 그러니까 비밀의 볕이에요"라고 말이다.

두 사람이 영화 초반 주고받는 이 대화에는 '밀양'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속내를 함축하고 있다. 여자에게 밀양은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상처가 치유될 위안처이자 새 삶을 약속할 미래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 멀리 간다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고통은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무엇이기 때문이다. 빛마저도 비밀을 갖는다는 의미의 밀양에서도 마찬가지다.

'해피투게더'의 연인들이 사랑을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고 '정사'의 연인들이 브라질을 향해 떠날 때, 떠남은 달라짐을 예고한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줄 뿐 그 이후를 그려내 보여주지 않는다. '해피투게더'처럼 그려내 보여주어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에서 이룰 수 없었던 연인의 사랑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도 결합되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먼 곳'의 이미지일 뿐 현실의 무게를 벗어던질 어떤 공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밀양'을 제법 먼 곳으로 알고 떠난 여인은 그 곳에서 혹독한 삶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단 하나 의지처로 삼았던 아들마저 잃고 드디어 신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왜 이토록 저에게 가혹한 것이냐며 힐난하고 비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혹독한 삶 곁에 종찬이라는 남자가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그 남자가 자신의 곁에 머물며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돌리지 못한다. 소중한 아들과 귀중한 돈을 잃은 마당에 그의 돌봄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신에게 기댄 그녀는 신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도움을 얻는다. 사람으로부터의 도움 그것은 곧 사랑일터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새 삶을 살아가고 하는 순간에도 신의 시험은 계속된다. 누구나 그 여자를 보면 가슴 아파 동정과 연민을 품게 될 테지만 삶이란 그녀에게만 혹독한 것은 아니다. 그 아픔은 아무리 멀리 갈 지언정 달라지지 않는 무게로 삶을 짓누른다. 짓눌린 삶을 그래도 견딜만한 향유로 견인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힘이다. 사람의 힘, 사랑의 힘, 그것은 때로 종교적 구원을 너머선 초월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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