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라면 주유소에서 나이 지긋한 주유원의 인사를 한 번쯤 받아봤을 터. 행동이 서툴러 보이지만 젊은이들도 마다하는 주유원 일을 해내는 모습이 사뭇 대단하다고 느낀 이들도 적잖다. 앞으로 운전자들은 이런 모습을 더욱 자주 접할 것 같다. 보건복지부가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한국주유소협회와 협약을 맺고 노인주유원 늘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좀 힘들지만 일하는 자체가 즐겁다"
허광(63) 씨는 약 2개월 전부터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주유소에서 젊은이들과 부대끼며 주유총을 만지고 있다. 몰려드는 자동차에 주유하고 계산하느라 심신이 피곤하지만 허 씨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허 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너무 흐뭇하다."고 말했다.
59세에 한 주택회사에서 퇴직한 허 씨는 지난해 말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허 씨는 "퇴직 후 4년가량 취미 생활만을 하니까 지루하고 건강도 많이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그런 상황이 심해져 우울증까지 왔다는 것. 허 씨는 그때부터 경비나 시장 배달 등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나이를 많이 따지는 통에 취업이 어려웠다. 어렵사리 한 수출 제조업체에 취업을 했지만 워낙 3D업종이라 몸이 이겨내질 못했다. 허 씨는 "너무 일이 고돼 손 인대가 늘어나 깁스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 4월 초 다행히 대한노인회 소개로 지금의 성서주유소에서 일하게 된 것. 허 씨는 "같이 일하는 젊은 주유원들이 나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체력엔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 3D업종으로 불리는 주유원 생활을 잘 견뎌내고 있기 때문. 허 씨는 "현금 계산이나 카드 결제 등이 젊은이들보다 서툴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허 씨는 "노인으로서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일을 한다는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아파트 노인 경비가 많이 퇴출되는 상황에서 주유소는 대체 직장으로 손색없다고 했다.
◆올해 노인주유원 1천 명 늘린다
올해 3월 보건복지부는 '노인일자리사업'의 하나로 한국주유소협회와 협약을 맺고 60세 이상 노인들을 주유원으로 적극 늘리기로 했다. 올해 전국적으로 2천 명의 인재풀을 마련하고 1천 명을 각 주유소에 취업시킨다는 계획이다. 과거엔 개별 노인 취업기관이 드문드문 수행하던 노인주유원 사업을 올해부터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
보건복지부는 노인주유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센티브도 마련했다. 노인주유원을 1년 이상 장기 채용할 경우 연간 270만 원의 '고령자신규고용장려금'을 채용 주유소에 지원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대구에서도 올해 60여 명의 신규 노인주유원이 생길 전망이다. 조병옥 (사)대한노인회 대구시연합회 취업지원센터장은 "각 주유소마다 방학 기간 외에는 젊은 주유원을 구하기가 힘든데다 노인 주유원은 믿음직스럽다는 인식 때문에 주유소 사장들도 노인 채용에 대체로 호의적이다."고 말했다. 22일엔 대한노인회 주최로 주유원 희망 노인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실시했다. 조 센터장은 "앞으로 수시로 교육을 열어 노인들의 주유소 취업을 돕겠다."고 했다.
노인주유원을 채용하고 있는 주유소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은희 성서주유소 소장은 "노인주유원들이 젊은이들에 비해 결제나 돈 계산 등을 배우는 게 느리고 서툴러도 믿음이 가고 손님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등 적잖은 장점도 많다."고 전했다. 문의)한국노인인력개발원(www.kordi.or.kr), 02)6203-6901.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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