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까번쩍'만큼 재미있는 말이 어디 있을까. '반짝반짝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삐까삐까'와 우리말 '번쩍번쩍'의 합성어다. 일제강점의 잔재이긴 하지만 그 말을 만든 그 누군가의 재치가 놀랍지 않은가.
삐까번쩍한 것에 익숙해져 있다가 그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갔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낡고 쇠락한 거리, 부서진 집,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스산함과 황량함이 절절이 묻어난다. 예전 탄광촌으로 이름있던 지역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폐광촌의 풍경
경북 문경, 강원도 태백, 삼척 등을 둘러보면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장롱에 오래 보관해둔 빛바랜 흑백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다.
태백시 철암동에 가면 옛날 흔적이 가장 많다. 폐광촌이 된 지 오래지만 철암역사 옆에는 쓸모없는 폐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산비탈에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빈 판잣집은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판자집을 대충 헤아려도 수십 채는 더 될 것 같다.
광부로 일했다는 이영식(69) 씨는 "1970, 80년대에는 집이 부족해 산 중턱에 임시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탄가루가 풀풀 날리는 석탄 더미 옆 오두막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웬만한 배경이 없으면 사택에 들어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거리에는 셔터를 내려놓은 점포가 많았다. 주민들은 70여 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흥청망청한 곳이었지만 80년대 후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뒤에는 장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한때 3만 명을 웃돌던 철암 인구가 현재 3천400명에 불과하다. 태백시가 철암시장을 재개발하고 판잣집 철거 등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석탄산업만큼 순식간에 몰락한 것도 드물다. 80년대 후반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으로 347개이던 탄광은 현재 7개만 남아있고 6만 5천 명을 헤아리던 광부 수도 5천700명으로 줄었다. 막장에 오르내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예전 영화 되살아날까
삼척시 도계읍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읍내에 들어가면 남쪽 언덕에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쓰던 광부 사택이다. 군대 막사처럼 질서정연하게 서 있지만 가까이 가면 절반 이상이 무너져 있다. 한 동(棟)에 다섯 가구가 함께 살았고 공동 화장실을 썼다. 한 가구에 배정된 공간이 대여섯 평이나 될까. 가족 4, 5명이 어깨를 부딪히며 아옹다옹 살았을 것이다.
아직도 거주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16년간 광부로 일했다는 김일용(56) 씨는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났다. 이제는 몸이 아파 거동하기 힘든 퇴직 광부와 오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았다."고 했다.
요즘 폐광촌들은 카지노(정선군), 골프장(도계읍), 석탄박물관(태백시) 등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문경시 가은읍도 관광산업으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94년 석탄공사 은성광업소가 폐광된 후 황폐해졌다가 이제는 문경석탄박물관, 연개소문 촬영지, 레일바이크 등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해 관광객이 30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주민들은 화려한(?)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옛날 영화를 되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상철(52) 씨는 "관광객 때문에 음식점들이 좀 나아졌지요. 그러나 다른 것은 예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라고 했다. 당시에는 가은읍 인구가 2만 3천 명(현재는 5천 명)이나 됐고 영화관, 목욕탕 등 문화시설(?)도 있었다. 술집, 고깃집이 즐비했고 기생 집도 '두 집 건너 한 집'일 정도로 많았다. 거리에는 돈으로 넘쳐났다. 1981년 광부 월급은 평균 25만 원 정도 됐는데 7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이었다. 은성광업소에서 일했던 정덕수(78) 할아버지는 "모두 월급받아 매일 돼지고기 먹고 술 마시느라 큰돈을 모으지 못했다."고 했다.
예전엔 보이는 것이라곤 탄가루뿐이었다. 하늘도 검었고, 강물도 검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시커먼스'였다. 이제 더이상 탄가루가 날리지 않고 새까만 얼굴도 없다. 오래되고 조락한 거리만 남아있을 뿐이다. 검은색은 시대 흐름에 밀려 다시 보기 어려운 색깔이 됐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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