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북도내 농가 49군데를 둘러보았다.
농림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정보문화센터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우수 농가'로 선정한 곳들이다.
농민들을 만나보고 영농현장을 샅샅이 찾았다. 어떤 작물을, 어떤 설비와 노하우로, 언제 얼마만큼 생산해서, 어떤 포장과 디자인과 상표로, 어디의 누구에게 주로 팔아서, 매출(조수익)은 얼마나 올리고 순익은 얼마인지를 두루 살펴보았다. 이런 결실을 올리기까지 도와준 대학, 연구소, 농업기술센터의 전문가들도 인터뷰했다.
결론은?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쳐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산물 개방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이르기까지 외부 요인은 끊임없이 우리 농촌을 강타하고 있고 급격한 노령화 추세는 내부적으로 농촌사회를 삭게 했지만 "한국 농업은 경쟁력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치의 희망도 자라지 않는 불모지일 것 같지만 우리 농촌은 꿈과 의지와 불굴의 노력이 싹 틔우고 자라는 문전옥답이라는 사실이다.
둘러본 농가들은 농촌정보문화센터와 각 시·군의 협의로 뽑혔다. 강원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최고다 하는 농가들로 모두 298곳, 경북도내에서 54곳을 선정한 만큼(이 중 "농사일이 너무 바빠서…." "취재 협조하는 시간에 일 더 하는 게 낫다 싶어서…."라고 말한 5곳은 살펴보지 못했다.) 모든 게 모범적이고 좋게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들이 거둔 실적은 놀랄 만하다.
남편과 부인, 2명으로 꾸려지는 농가일 경우 대다수가 적어도 1억 원에서 많게는 4억 원까지의 조수익을 거둔다. 빚 8천만 원을 안고 귀농한 50대 농민은 12년 후인 지난해 콩 감자 고추 팥 같은 농작물 생산으로 5억 원의 순수익을 올렸고, 농사의 '농'자도 모르고 무작정 귀향한 40대 계란 판매상은 10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의 영농조합법인 대표로 우뚝 섰다. 빈털터리로 귀농한 지 11년 만에 30억 원 매출을 올리는 표고버섯 농장주도 있고, 정년퇴직 후 이순 나이에 농사에 뛰어들어 10년 만에 3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유기농 대부'로 불리는 이도 있다.
"쌀은 안 된다."는 게 무슨 정설로 굳어진 마당에 700마지기 기계화 쌀농사로 트랙터와 벤츠를 동시에 타는 농민 부자(父子)도 만만찮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경우는 한 과수농원 대표인 것 같다.
잘못 선 보증에 도시생활을 접고 무작정 귀농해 배 농사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으니 당연히 1년 만에 3천300평에 심은 배나무를 모조리 뽑아내야 하는 실패를 맛봤다. 수확이라고는 배나무 사이에 간작으로 심은 상추 무 호박들. 끼니를 굶고 단속반에 쫓겨 가며 도시 아파트단지에서 노점상을 했다. 전문서적을 탐독하고 대학과 연구소를 찾아다니며 다시 배나무와 씨름하길 2년, 드디어 배나무 가지를 Y자로 벌려 영양성분을 꽃눈에 집중시켜 고당도 배를 다수확하는 생산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 기술로 국립대학 농업대학원에서 최고논문상을 받은 전문가가 됐고 덩달아 지난해 1억 8천만 원이 넘는 돈을 만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냥, 혹은 운이 좋아서 이런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농가들보다 더한 좌절과 실패와 시련을 겪었다. 외부 시장 충격과 갑작스런 가격 파동, 판로와 자금상 어려움, 심지어 어이없는 풍수해 재해까지 덮쳐 몇 번씩이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예사였다.
이런 이들이 한국 농업의 희망으로 떠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독할 정도의 품질우선주의, 목숨 같이 여기는 친환경 농법,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아이디어 창출, 자체 유통망 확보, 고부가가치화, 포장 디자인 브랜드 같은 품질 외적 부문까지 신경쓰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감수하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여기에 하나 특이하게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모두 같이 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자기만의 영농 노하우라 하더라도 누가 배우러 오면 가르쳐 준다. 아예 제 돈 들여 번듯한 교육장 지어놓고 우리나라 농민들에게는 물론 일본 중국 등지에서 오는 외국인들에게까지 아낌없이 가르쳐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농업의 희망은 쑥쑥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훈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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