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용병모시기 멕시코 삼고초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스프링캠프에는 3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당시엔 보유 용병 3명에 출전선수는 2명으로 정해져 유격수 틸슨 브리또와 투수 패트릭 그리고 외야수 루크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개막전에 임박해 루크가 등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이 어렵게 되자 초비상이 걸렸다.

루크를 방출하고 이번에는 확실한 투수를 영입하기로 했지만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충분한 선수 자료가 없었다. 막막한 가운데 김재하 단장과 양일환 코치, 송창근 과장(통역)등 관계자 여러 명이 미국을 돌다가 우연히 에디 디아스를 만났다. 그는 당시 멕시코에서 우상으로 여기던 나르시스 엘비라의 에이전트였다. 삼성이 나르시스 엘비라에 큰 관심을 가진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김응용 감독이 그 전 겨울에 이미 엘비라의 기량을 확인해 검증이 되어 있었고 일본 긴데츠 구단에서 2년간 활동해 동양 야구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엘비라 파일에는 빨갛게 표시된 부연 설명도 있었다. '일본 야구의 일률적이고 조직적인 환경을 싫어해 그만둠. 동양 야구에는 거부반응 있음.' 그럼에도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디아스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조 알바레즈 코치와 다저스에서 같이 선수생활을 했는데 조 알바레즈와 국내에서 친했던 송창근 과장이 그런 인연을 핑계로 다가서서 설득했다.

이튿날 그들은 멕시코행 비행기를 함께 탔고 그날 저녁 엘비라를 만났다. 끈질긴 설득이 며칠간 이어졌지만 엘비라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 멕시코에선 수시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대부분 시간낭비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김 단장과 송 과장은 포기하지 않고 디아스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 도움을 호소한 끝에 디아스와 함께 마침내 엘비라 설득에 성공했다.

아직 한가지 큰 과제가 남았다. 엘비라가 속한 멕시코 캄페체 야구단의 구단주가 바로 주지사였는데 막강한 힘을 가진 주지사가 과연 엘비라를 순순히 풀어줄 것인지가 의문스러웠던 것. 마침 디아스는 캄페체의 감독을 지낸 바 있어 구단주인 주지사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 이 점을 이용, 주지사와 협상에 나섰고 결국 성공했다. 멕시코 내 타 팀으로 가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다음날 '멕시코의 야구 영웅' 엘비라는 충격적인 국내 무대 은퇴 발표를 했다.

2002년 4월 선발 배영수와 마무리 김진웅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4위로 추락했던 삼성은 5월 나르시스 엘비라가 합류하면서 연승을 거두기 시작했고 5월12일 1위를 탈환해 결국 숙원이었던 우승을 이뤘다. 한국시리즈 1차전을 승리로 이끈 멕시코 출신 좌완투수 엘비라가 없었다면 과연 우승은 가능했을까? 또 올 시즌 삼성의 새 외국인 투수 브라이언 매존은 제2의 엘비라가 되어 줄까?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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