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한 달 앞둔 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조를 이뤄 계획 짜기에 정신 없었다. 그 계획 준비물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다름 아닌 알코올이었다. 선생님의 소지품 검사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우리는 그날만큼은 선생님 머리꼭대기에 앉기로 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담긴 원통형 과자통(프링글스)에 포테이토 칩을 다 비우고 소주 한 병을 넣은 후, 과자통이 소주병보다 길어 그 위에 과자로 다시 살짝 덮어 위장했다.
과자로 둔갑한 소주 과자통을 가방 속에 낭창하게 넣었다. 어김없이 선생님의 소지품 검사는 시작되었고 우리 차례가 다가오자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과자통을 열어보지 않고 지나가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휙∼ 돌아보신 것이다. 우린 모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 과자 맛있니? 세트로 같이 사가기로 약속했니?" 라고 하시곤 지나가셨다. 이런 걸 보고 10년 감수했다 하는 거다. 휴∼
목적지에 도착해 여기저기 관광 후 이미 지칠 때로 지쳐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린 전혀 피곤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야심작이 남아있기에.
취침구호를 마치고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우리 방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뽀시락거리며 캄캄한 어둠 속에 이미 조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지근한 소주를 한잔씩 쭈욱 들이켰다. 밍밍하고 쓰디쓴 알코올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맛없는 것을 어른들은 캬∼ 소리를 내며 좋아라 마시는 이유를 몰랐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의 얼굴은 울긋불긋 달아올랐고 밤새 속닥거리며 잊지 못할 여고시절 수학여행 밤을 알딸딸하게 보냈다.
요즘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관광버스를 보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때의 친구들과 만나면, 마트에서 문제의 과자통과 마주치면 소주 한잔이 절로 생각난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소주가 아닌 추억에 흠뻑 젖고 싶다.
강민정(대구시 남구 봉덕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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