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 수비면 오지마을에서 태어나 호롱불 밑에서 25년을 생활하다 1983년 지금의 남편과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
너무 낯선 대구였습니다. 불도 지피지 않은 밥솥에서 밥이 나오는 걸 보며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렵고 신기했습니다. 자기와 결혼하면 농사일도, 고생도 끝이라던 남편의 말에 결혼만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그땐 참으로 순진했습니다. 남편은 잘생기고 착하고 무엇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사나이였지만 돈, 그거 참 도시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더군요. 돈이 없으니 불편한 것이 많은 것이 도시생활이었습니다.
그땐 다시 호롱불 밑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호롱불 밑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해야되겠구나 하는 판단이 서더군요. 그때부터 우리 둘은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없는 사람이 왜 또 맏아들인가요. 제사에, 집안 행사에 돈을 모을 날 없이 그냥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이젠 세월이 흘러 집도 마련하고 두 아들도 다 키웠습니다.
결혼 20주년 땐 말로만 들어오던 제주도로 수비면 촌 여자가 비행기 한 번 타봤습니다.
전 두 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아달라고요. 모든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은 오는 것이라고요.
오늘도 전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신문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매일신문을 싣고 배달합니다. 사랑합니다.
김경자(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