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大富는 在天, 小富는 在勤

사업가였던 나는 "무엇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물음에 대한 내 입장은 매정하다. 도대체 '부자 되는 법'을 알면 왜 가르쳐 주겠는가? 치열한 경쟁자만 하나 더 생겨나게….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의 효용가치와 위력은 엄청나다. 시중에서 膾炙(회자)되고 있는 말처럼, 돈만 있으면 길거리의 강아지도 犬(견)사장이 되고, 노숙자도 벌떡 일어나 회장으로 돌변해 골프채 둘러메고 유흥가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돈을 처음 접한 것은 6·25 전쟁 후의 어린 시절이었다. 당시 내 고향에는 벌목사업으로 장작 운반차량이 자주 들락거렸다. 산골에서 처음 보는 차 구경도 신기하거니와, 배기통에서 내뿜는 휘발유 연기가 무척 향기(?)로웠다. 연기를 들이켜면 뱃속의 회충이 죽는다는 속설을 믿고 차 꽁무니에 코를 박고 따라 다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벌목장에서 장작개비를 날라다 주면 품삯으로 1원짜리 지전을 한두 닢씩 나눠줬는데, 나만 아는 비밀 아지트에 감추어 두고 한 장 두 장 쌓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상점까지는 3~4㎞ 떨어져 있어 돈을 쓸 기회도 없었거니와 쓸 줄도 몰랐다.

산판은 가을걷이 후에 시작해서 이듬해 농번기 전에 끝이 났다. 그런데 꽃피고 새 우는 봄이 오자 산과 들로 뻔질나게 쏘다니며 노는 바람에 정작 비밀장소에 감추어 둔 지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을 찾아온 엿장사 때문에 숨겨둔 돈이 생각나 그 장소를 찾았으나 지전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발 뒤축에 연기가 나도록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내 돈이 없어졌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인(人)쥐가 물고 갔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다급하게 또 물었다. "인쥐가 어디 있는데?" 그러자 어머니가 "우리집에 인쥐가 몇 마리 있다."며 웃으셨다.

그 길로 나는 '인쥐를 잡는다.'고 쥐약과 쥐덫을 찾는 등 분탕을 치다가 형과 누나들로부터 꿀밤 세례만 받았다. 등잔불 주위에 둘러앉은 가족들 앞에서 씩씩거리며 "내 돈 내놓으라"고 떼를 쓴 이튿날, 아버지는 시장에서 돼지새끼 여러 마리를 사 와서는 제일 충실한 놈을 내 것으로 점지해 주셨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돈 만지지 않고, 돈 이야기 없는 날이 있을까? 돈 때문에 생기는 개인 간의 분쟁은 다반사요, 더러는 국가 간의 전쟁도 불사하는 판국이다. 능력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인 듯하다.

고위 공직자나 금융인으로 한시절을 풍미하던 위인들이 퇴직 후 백수생활이 지겹던 터에, 좋은 자리와 돈벌이를 보장해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퇴직금을 죄다 날리고는 멍든 가슴을 삭이지 못해 건강까지 읽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친구들과 사전에 상의라도 한번 해보고 결정하지 그랬느냐"는 나무람에 "일시적인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눈에 콩 깍지가 씌었다."고 한숨을 쉰다.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보안유지에만 신경이 쓰이더라"는 것이다.

비밀스럽고 음침한 곳일수록 사해행위가 판을 치고 흡혈충이 창궐한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서점마다 '부자 되고 돈 버는 책'이 홍수를 이루고, 성공전략을 전하는 글이 넘쳐나지만, 정작 부자 되는 법을 깨우치기란 쉽지 않다.

과연 돈 버는 방법이나 공식이 있을까? 그걸 몰라서 부자가 못되는 것일까? 진짜로 돈 버는 방법은 누구도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大富(대부)는 在天(재천)이요, 小富(소부)는 在勤(재근)이라.'는 옛말이 정답이라면 정답일까.

부자 되는 정답이란 애시당초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능력과 소질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어린 시절 비밀장소에 감춰뒀던 지전을 잃어버리고 낙심했던 그 봄날이 또 저물어간다. 김종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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