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흔, 인생은 다시 피어난다

1. 40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룬
1. 40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룬 '얘노을 남성합창단' 공연 2. "더 이상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지마!"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패션을 적극 활용하는 40대 남성들이 늘고 있다. 동아쇼핑 남성복 매장.

"따뜻하게 날 맞는 건 좌변기뿐." 일본 다이이치생명보험 직장인들을 상대로 공모한 창작 '센류(川柳:인간사와 세태를 풍자하는 짧은 시)' 중 1위에 오른 글이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에게도 꼭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다. 흔히 불혹(不惑)으로 일컬어지는 남자 나이 40.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는 게 40대 남성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하지만 40대가 변신하고 있다. 운동, 음악, 문학 등을 통해 삶을 반추하는 40대들이 늘어나고, 개인 블로그를 통해 마음의 안식처를 찾는 이들도 있다. 패션, 미용의 새 소비층으로 각광받는 것도 바로 40대 남성들이다. 그들의 변신과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40대 남성들에게 탈출구는 전혀 없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정답. 주위를 둘러보면 40대를 즐겁게 보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40이란 숫자에 짓눌리지 않고 인생 중반을 활력 있게 보내는 이들을 찾아봤다.

▶"노래는 나의 인생!"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40대를 의미 있고, 보람 있게 보내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통기타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대구경북 모임 운영자 박대윤(44·경산시 진량읍) 씨. 주위로부터 '40대를 즐겁게 보내는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40대론은 평범하지만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수 김광석, 김현식의 노래를 좋아하며 3년 전부터 통기타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 씨는 산악자전거(MTB)를 탄 지 7년이 넘었고,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했다. 또 1년 전부터는 경남 밀양까지 가 '태평농'을 배워 진량읍에서 200평의 면적에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태평농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원시시대처럼 땅심만으로 농사를 짓는 농법"이라고 소개했다.

"하루라도 시작이 늦으면 영영 못하는 법입니다. 40대라고 주눅이 들기보단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게 40대를 알차게 보내는 비법이지요." 박 씨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가정에서 냉대를 받는 게 40대의 자화상"이라며 "장기적 플랜을 갖고 자기 자신을 찾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통업체를 경영하는 황삼진(44·대구시 서구 내당동) 씨는 매주 목요일이면 가수로 변신한다. '얘노을(이야기와 노래가 있는 마을의 줄임말) 남성합창단'에 소속된 황 씨는 20대부터 60대 남성들로 구성된 합창단 동료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입을 맞춰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있다.

"3년 전부터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어요.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엔돌핀이 솟아나고, 스트레스가 저멀리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합창단 33명 가운데 황 씨와 같은 40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이는 1, 2명에 불과할 뿐 나머지 모두는 노래가 좋아 합창단에 스스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황 씨는 "남자 나이 40이면 가족 부양, 사회생활 등에 짓눌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라며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자기 계발 차원에서 합창단 활동은 매우 유익하다."고 귀띔했다. 40대에는 사회생활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기관리를 해야 할 때이지요. 자기만의 건전한 여가 문화를 찾아 즐기는 게 40대를 알차게 보내는 비결입니다."

▶운동·문학, '최고'

권동진(48·대구시 북구 복현동) 씨는 마라톤에서 삶의 활력소를 찾았다.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며 40대를 맞으니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어느날 권태감이 몰려 오더군요."

41세가 되던 해 권 씨는 운동화 한 켤레를 장만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시작으로 마라톤에 뛰어들었다. 그 후 마라톤이 생활의 일부가 될 정도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42.195km나 되는 마라톤 풀코스를 42차례나 완주했고, 2004년에는 미국 보스톤 마라톤대회에도 다녀왔다. 지금은 한반도 횡단 등 울트라마라톤을 즐기고, 일주일에 80km 정도를 꼬박꼬박 달리고 있다.

"40 이후에도 수십 년이나 남은 삶을 제대로 살려면 마라톤을 하는 저처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에 스스로를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 씨가 꼽는 마라톤의 매력은 여러가지다.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은 뛰면서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달리다 보면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심폐 기능이 좋아지는 등 건강 유지는 당연히 따라오는 부산물이지요."

농협 대구본부에 근무하는 정일경(43) 씨는 40대가 되면서 '걷기 신봉자'가 됐다. 1년여 전부터 집(대구 수성구 시지동)과 직장(수성구 중동)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집~지하철역, 직장~지하철역 구간을 70분 동안 매일 걷고 있다. 걸어 다닌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정 씨의 모습은 확 달라졌다. 뱃살이 들어가고 다리에는 근육이 붙었다. 무엇보다 자가용을 타고 다닐 때보다 하루가 훨씬 여유로워졌다.

"아침에 걸어 출근하면서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를 생각하지요. 자기 나이에 ㎞를 붙인 게 인생의 속도라고 하는데 걷기를 즐기는 저에게는 시속 40㎞가 아닌 30㎞로 인생의 속도가 오히려 느려진 것 같아요."

수필이나 시를 통해 인생을 반추하는 40대들도 많다. 얼마 전 1기생을 배출한 '수필과 지성 문예아카데미' 경우 수료생 34명 중 40대 남성이 4명을 차지했다. 강좌를 운영한 수필가 장호병(55) 씨는 "앞만 보고 달려온 남성들은 40대가 되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재충전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며 "수필 등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40대 남성들이 점차 느는 추세"라고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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