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미술평론가, 전시·출판기획자로 활발할 활동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목수가 되어 나타났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진송(48) 씨다. 지난 2001년 '목수일기'를 펴낸 김 씨가 개정판을 냈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에는 새로 만든 목물 사진을 추가하여 그간의 흐름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작업장 짓기, 나무로 만든 책벌레 이야기 등 몇몇 글도 보충했다.
책은 김 씨가 10여 년째 목수일을 하면서 경험한 나무와 목수일, 그리고 목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조립식의 목공일이 아니라 나무를 구하는 데서부터 목물이 탄생하는 과정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생계수단으로써 목수일의 즐거움과 어려움 등을 일기 형식으로 솔직히 토로하여 공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평론가 출신답게 글에서 깊이나 맛이 느껴진다. 저자는 "손으로 뚝딱거려 뭘 만드는 일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몸을 써서 생계를 이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하고 싶어서 아마추어로 시작한 목수일을 회상한다.
저자가 목수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품종만큼 다양한 나무의 목리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비를 맞아도 되는 나무인지, 바람과 온도, 햇빛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 나무의 특성을 알아야 그에 맞는 쓰임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 관한 책은 많으나 목리에 대해 기록한 책은 드물고 흔한 나무일수록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무너진 옛집의 나무, 야산이나 길에 쓰러져 죽은 나무 등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의 목리와 품성을 목수의 눈으로 직접 살핀 결과를 고스란히 책에 실었다.
저자가 만든 목물은 800여 점에 이른다. 여섯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저자가 만든 목물 사진이 본문 곳곳에 들어 있다. 하나같이 나무의 쓸모를 생각한 뒤 나무의 원래 형태에 상상력을 덧칠해서 만든 독특한 작품들이다. 저자는 상상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상상력은 경험의 산물이다. 어른들이 많은 경험을 하고서도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상투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상상력을 키우려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상투적 시각에 매몰되지 말 것을 권한다. 미꾸라지와 물웅덩이 모양을 형상화한 의자, 기타 줄 모양의 등받이를 가진 의자, 돌고래 모양의 스탠드 등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 목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목수의 길로 접어들고서 목수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는 저자는 연장을 능숙히 다루는 기술, 나무에 대한 풍부한 지식, 물건의 기능과 꼴에 대한 미학적 기준과 판단, 힘과 끈기를 목수의 조건으로 꼽았다. 눈썰미가 야무지고 손이 빨라야 다루는 연장이 몸에 붙기 마련이므로 손이 둔한 목수는 말이 되지 않으며 들은 풍월이건 경험이건 나무와 목재에 대한 지식 없이 목수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눈을 감고 연장을 다루는 것과 같다는 것. 또 열심히 만들어도 구조가 엉성하여 쓸모없거나 알름답지 못하면 그 물건은 이미 물건이 아니며 끈기 있게 달라붙어야 목수일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남한에서 가장 나무 종류가 많다는 축령산에 손수 붉은 벽돌을 쌓아 작업실을 지은 과정, 목수가 주로 사용하는 연장들, 용접이야기, 숱한 실수와 사고 등 목수일과 관련된 애환도 풀어 놓고 있다.
이와 함께 자의적으로 매길 수밖에 없는 목물의 가격이 너무 높다고 생각되지만 가격이 낮으면 생활이 불가능해 일을 지속하는 의미가 없다는 등 삶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344쪽. 2만 3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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