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5월, 거리에서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 옆을 지나던 한 쌍의 남녀에게 곧 작은 말다툼이 생겼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하늘거리는 치마 아래 새하얀 종아리. 이러한 작은 에피소드가 일어나는 까닭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 그리고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해 자연히 좇게 되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최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는 작년 겨울 개봉했던 '미녀는 괴로워'라는 작품이었다. 어느 시대에서나 '미'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추구가 있었지만, 현대처럼 다양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미를 강요하고 있는 시대에 유효적절했던 영화였기에 많은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뷜렌도르프의 풍만한 '비너스'나 황금비율을 가졌다는 밀로의 '비너스'는 모두 아름다운 여체를 표현하고 있지만 시대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는 무척이나 다르다. 인간은 모두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그 나름의 잣대가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TV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모두 나름대로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이 획일적으로 같은 등수를 매겨주지는 않는다. 아름답다거나 멋있는 것과 별개로 대상이 '나'에게 주는 매력이라는 부분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멋있는 풍경이나 예술품들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를 타고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과, 태고의 정적이 느껴지는 청송의 어느 산길을 넘어가면서 바라보는 자연은 다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울림을 준다는 면에서는 같은 본질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에 걸린 명화와 유치원에 들어간 내 자녀가 처음 그린 그림이 주는 기쁨은 다르고도 또 같은 것이다.
"항상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사물이 있다."고 말한 객관주의적 미론의 대표주자 플라톤과 "미란 사물들 그 자체에 있는 성질이 아니라 단순히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라던 주관주의적 미론의 흄.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내 짧은 지식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5월의 거리를 스쳐가면서 드는 생각은 그것이 무엇이든 획일적인 방향으로 추종하거나 강요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밝고 따뜻한 아름다움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길 바라는 것. 그것뿐이다.
공정욱(치과의사·극단 '마카'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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