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충규 作 '냇가로 끌려간 돼지'

냇가로 끌려간 돼지

김충규

냇가로 끌려가면서 돼지는 똥을 쌌다

제 주검을 눈치 챈 돼지는

아직 익지 않은 똥을 수레 위에 무더기로 쌌다

콧김을 푹푹 내쉬며 꿀꿀거렸다

입가에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늘은 창자처럼 붉었다

내일 있을 동네잔치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돼지가 냇가에 도착했을 때

거기 먼저 도착해 있는 것은

숫돌을 갈고 있는 칼이었다

칼이 시퍼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체념한 듯 돼지는 사람들을 둘러본 뒤에

씩 웃었다 그 순간, 쑥 들어오는 칼을

돼지의 멱은 더운 피로 어루만졌다

하여간 돼지의 본질은 살집에 있다. 소나 말처럼 일하지 않고, 닭이나 오리처럼 알을 낳지 않고, 개나 고양이처럼 집과 부엌을 지키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시며 살집을 키워야 한다. 가느다란 네 다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몸집을 키워야 한다. 한 점의 손실도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 움직임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화분에 심어놓은 식물처럼 양돈장 좁은 금속 틀에 갇혀 생애를 마감한다. 구수한 낱알, 향기로운 채소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그는 오직 먹고 싸고 또 먹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죽음을 웃음으로 바꾸는 해학이 있다. 그 놀라운 재능이 고사상 위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드는 게 아닌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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