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하늘 천, 따 지'에 20년

얘야, '푸른달'이라고도 불리는 5월도 어느새 저물어가는구나. 그런데 '푸르다'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을 것 같니? 아마도 '붉다'라는 말이 '불(火)'에서 왔다고 하니 '푸르다'라는 말은 '풀'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구나.

'푸르다'와 '붉다'는 모두 우리 조상이 중요하게 여기던 5방색(五方色) 중의 하나이지. 그럼 나머지 5방색인 '희다', '검다', '누렇다'는 어디에서 왔을 것 같니?

이 중에서 '검다'는 하늘에서, '누르다'는 땅에서 온 말이고, '희다'는 해(太陽)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는구나. 아니, 하늘이 어떻게 검은 색이냐고 궁금하겠지.

이 이야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우리 조상이 즐겨 공부하던 '천자문'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구나. 천자문 첫 줄에는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르 황(黃)'이 나오지. 봐, 여기에서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나오지 않니?

그런데 천자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구나. 글쎄 '하늘 천(天)', '따 지(地)' 단 두 글자를 배우는 데에 각각 10년이 걸린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니? 그리고 그 두 글자만 배웠는데도 그 어떤 사람도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면 어떤 생각이 드니?

이 선비는 우선 '하늘 천'에서 '하늘'은 그대로 '하늘'이라고 했는데, 왜 '땅'은 '따 지'라고 해서 '따'라고 했을까에 대한 것부터 의문을 품고 그것을 풀기 위해 애를 썼단다.

그리하여 '땅'이라고 하면 목구멍이 울려 소리를 내기에 힘이 들기 때문에 '따'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하였지. 그리고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땅'을 '따'라고 하였다는 증거까지 찾아내었단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성삼문의 시조(時調)인데, 어린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비꼬면서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굳게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지. 이 시조 종장에 '따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바로 '땅에'라는 말이란다.

또한 그러는 가운데에 넓은 땅을 가리켜 '온누리'라고 하는데 '누리'라는 말에는 '누렇다'는 뜻이 들어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지. 그리고 '붉다'와 '푸르다'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하늘이 왜 검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하늘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어떻게 하여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리는가?', '큰 죄를 지으면 하늘에서 벌을 내린다고 하는데 어떤 경우를 가리켜 천벌이라고 하는가?' 등등의 의문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지학, 물리학, 기상학은 물론 색상학, 철학 등 여러 학문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하여 이 선비는 마침내 훌륭한 학자가 되었던 것이지. 어때, 우리도 더욱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보지 않니?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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