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와서 안 한다고 하면 어쩌니?" "싫어요. 발 다 버릴 것 같은데요." "괜찮아. 아빠랑 같이 해보자."
아이들은 논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다. 처음 해보는 모내기에 호기심은 새록새록 솟지만 물이 가득 찬 논이 무서운가 보다. 하지만 떼쓰기도 잠시. 한두 포기 심어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엄마, 너무 재미있어요. 엄마도 같이 해요." 발이 쑥쑥 빠지는 진흙에 옷은 온통 흙투성이가 됐지만 아이들이 대견한 듯 엄마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가득하다.
덜컹거리는 트럭에 올라타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강둑을 따라 달리는 기분은 놀이공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원한 강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져도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감자밭에서 해야 할 체험은 '일 하지 않은 자 먹지 말라'. 몇 시간 뒤 있을 캠프파이어에서 구워먹을 감자를 캐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 숲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감자줄기는 잡초와 다를 게 없다. "엄마, 감자가 어디 있어요? 아무리 봐도 안 보여요." "호미로 흙을 긁어봐. 예쁜 보물들이 많을걸." 이내 포대는 꽉 차고 고사리손으로 캔 감자에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씩 뚝딱 비운 뒤에는 새끼 꼬는 시간. 마당에 퍼질러 앉아 마을 어르신이 가르쳐준 대로 퉤퉤 침까지 묻혀가며 비벼보지만 새끼는 꼬이지 않는다. 숫제 머리를 꼬듯 새끼를 땋는 모습에 어르신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이튿날 아침,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토마토 비닐하우스로 들어선다. 한낮도 아닌데 하우스 안은 찜통이다. 채 10분을 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직접 수확하는 재미에 모두들 나눠 준 5kg짜리 종이상자가 넘치도록 토마토 줄기를 헤집는다.
비룡산(飛龍山·해발 240m) 정상에 올라서서 굽어보는 회룡포마을의 전경은 장관이다. "정말 육지 속에 섬이란 말이 딱 어울리네요. 어쩜 저렇게 생겼을까요?" "전국에 있는 물돌이마을 가운데에서도 이곳이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박용성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모두 감탄사를 쏟아낸다.
깨끗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회룡포의 명물, '뿅뿅다리'로 향한다. 숭숭 구멍이 뚫린 철판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걷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난생 처음 보는 '고무 다라이 보트'를 타려고 난리다.
"애들이 수영장에서 튜브는 타 봤지만 이런 놀이가 있다는 생각이나 해봤겠어요? 어른들도 해보면 안될까요?" "다음에 오시면 더 큰 걸 준비해 놓을 게요. 한 번 해봅시다." 계절의 여왕, 5월의 햇살에 반짝이는 내성천이 헤어짐이 아쉬운 듯 꼭 잡은 발목을 놓지 않는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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