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윤조의 수다수다] '내 남자의 여자' 왜 인기인가?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연일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화제다. 어딜 가도 채널 고정. "어유~, 뭐 저런게 다 있어? 내가 다 화나네." 아줌마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드라마에 몰입해 있다.

취재를 통해 수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과연 인기는 인기인가보다.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 정도의 30, 40대 남성들조차도 드라마 줄거리와 캐릭터 쯤은 간단히 꿰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 드라마에 열광하게 만드는가? 사실 내용을 살펴보면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불륜'이란 소재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친구의 남편을 뺏은 여자'라는 설정으로 바꿔놓은 것이 전부일 뿐인데.

▲내 남자의 여자, 왜 인기인가?

이 드라마의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졌다. 지수(배종옥)의 입장에서는 '자기 남편의 숨겨진 여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화영(김희애)의 입장에서는 '내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를 뜻하기도 한다. 김희애씨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자의 의미를 이야기 하기도 했다. 어쨌든, 보는 관점에 따라서 두 가지로 해석가능한 제목이다. 아마 드라마를 즐겨보는 대다수의 주부들은 전자의 의미만을 따지겠지만.

어쨌든 뻔한 '불륜'이라는 소재를 떡 하니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가 왜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김수현 작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 특유의 톡톡 쏘아대는 말투. "너희 짐승이야."라는 지수의 외침에 "그래, 우린 짐승이야, 행복한 짐승."이라고 맞받아치고, "죽어서 지옥으로 갈께"라며 지수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화영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쾌감을 느낀다. 박희정(41'여) 씨는 "작가 특유의 콕콕 찔러대는 대사를 들을때마다 '과연 김수현'이라는 감탄이 터져나온다."고 했다.

배우들의 한껏 물오른 연기실력도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다. 심지어 드라마 게시판에서는 난리가 났다. 배종옥의 팬들과 김희애의 팬들이 서로 "더 뛰어난 연기로 드라마의 맛을 한껏 끌어올린다."고 흥분한다.

동의하긴 어렵지만 '사람이 묻어난다'고 주장하는 시청자들도 꽤 된다. 김호영(43'여) 씨는 "단순히 '불륜'의 과정을 보여주기 급급한 드라마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라며 "가정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윤리교과서 적인 결론보다는 엇갈리는 심리묘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했다.

▲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왜 드라마에는 늘 바람피는 남자와 상처입은 아내만 등장할까? 미스테리다. 물론 여성이 바람피는 이야기도 간혹 등장하긴 하지만 이 만큼 대중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바람피는 남성과 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이 우리사회에 일반적이라 그런가?

이런 물음에 남성들은 의외로 순순히 손을 들었다. 남성의 입장에서 봐도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남자들은 '바람기'가 내재된 존재라는 것.

박모(45) 씨는 "10년 이상 살면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관계가 따분해지게 마련"이라며 "색다른 유혹을 느끼고픈 충동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혹시 아내에게 쌓인 불만이 외부에서 충족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남성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사랑이 견고해도 어느날 잠시 눈이 팔리는 것이 남성들이란다. 늘 드라마에서 아내는 피해자로 그려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상당수의 남성들은 수긍을 했다. 아무리 잘 해 주고, 부부관계에 문제가 없어도 바람이란 것은 남성의 본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은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잘잘못을 따져보면 문제 없는 부부관계가 어디 있겠냐만은, 바람은 그 문제 이전에 부는 말 그대로의 '바람'이란 것이 남성들의 설명이었다.

남성들은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 외에는 도무지 남성을 편안하게 이해해줄 줄 모르는 여자에게 어떻게 가정을 모두 팽개치고 넘어갈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더군다나 줏대없고 우유부단한 준표(김상중 역)의 모습을 보면 오만 정나미 다 떨어질 것 같은데 그 남자에 목매는 모습도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단다.

김모(45) 씨는 "처음에는 극단적인 설정에 몇 번을 봤지만 사실성이 떨어져서 더 이상 보지 않고 있다."며 "버려도 될 카드(준표)에 목숨거는 두 여자나, 섹시함 빼고는 시체인 여자에게 휘둘리는 준표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는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모든 남성들이 바람을 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법. 잠재된 욕망을 밖으로 표출해 내느냐, 마음속의 잠시 흔들림으로 끝나느냐의 차이다. 세상의 모든 남성을 눈꼬리 치켜세우고 쳐다보지는 말자.

▲ 화영,그녀에 대하여

드라마에서 화영은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다. 김희애 역시 이런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한껏 부풀린 사자머리에 걸핏하면 란제리 차림과 함께 뇌쇄적인 눈빛을 던진다.

이런 모습에 대해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일부 여성들은 이런 화영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예쁘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를 화영을 보며 충족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 호의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런 꼴로 다니니 남의 남자나 후리고 다니지. 쯔쯔~"라며 혀를 차는 안방극장 시청자들도 꽤 된다.

하지만 남성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하룻밤 재미 볼 생각이면 모를까 저런 여자를 사랑한답시고 자식이며 아내를 내 팽겨칠 사람은 없다"는 것이 드라마를 지켜보는 남자들의 반응. 잠시 눈이야 혹하겠지만 사사건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그 모습에 어떻게 빠져들 수 있겠냐는 것이다.

황모(38) 씨는 "톡톡 튀는 여자가 연애 상대로는 상큼하지만 결혼은 일상"이라며 "톡톡 튀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늘 그런 여자는 피곤해서 함께 살기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집에 들어가면 일단 편안함,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인 남성들의 심리인데 화영 같은 스타일은 함께살기는 피곤한 타입이라 '노 땡큐'란다.

▲ 지수에 대하여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 사실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가장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가 지수의 언니 은수(하유미 역). '바람기가 천성'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남편을 꽉 쥐고 살면서, 같은 향수 냄새 사흘을 풍기자 엎어치기 한방으로 간단히 제압해 버린다. 동생의 남편을 뺏어간 화영에게는 쌈닭이 따로 없다. 머리채 휘어잡고 눈덩이가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치열한 육박전을 벌인다. 욕? 시원하게 한다. "지랄 쌈 싸먹네.", "기름에 튀겨죽일 년"이 은수가 만들어낸 유행어라면 유행어랄까.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언니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생의 아픔에 몸으로 뛰어들어 싸워주고, 생계걱정에 돈 까지 해결해 주겠다며 큰소리 치는 이런 언니 한 명 있음 정말 인생살기 편하겠다. 세상 무서울 것이 어디 있으랴. 다만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언니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수의 캐릭터 역시 공감보다는 교훈적이기 그지없다. 상처받고 풍지박산 난 지수의 마음, 그렇지만 아들 경민에게만은 누구보다 착한 엄마 그 이상이다. "아빠는 널 사랑해, 엄마가 잘못한 거야.", "우리아들, 사랑해." 지수가 아들에게 하는 대사를 들어보면 부처도 세상에 그런 부처가 따로 없다. 보통의 엄마라면 "너도 홍가아냐? 홍가 꼴도 보기 싫어."라고 한번쯤 폭발할 법도 한데 아들에게만은 망신창이가 된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데 도사급이다.

뭐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된다는 말은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과 한 치도 다를바 없는 드라마속 캐릭터는 아무래도 심심하니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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