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건물이 변신하고 있다. 통·폐합으로 쓸모가 없어진 파출소, 학생수 감소로 문을 닫은 학교가 리모델링을 거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새 주인의 열정으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현장을 찾았다.
▶파출소서 갤러리로
지난 3월 대구시 수성구 수성1가 우체국 옆에 문을 연 갤러리 '해인방'. 이곳은 통·폐합으로 쓸모가 없어진 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귀금속 수공예품을 주문제작하고 있는 김상원(43)·정해인(39) 씨 부부가 공방을 열기로 마음먹고 장소를 물색하다가 지난해 10월 이곳을 발견했다.
"많은 장소를 돌아보다가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구벌 대로변에 위치한데다 파출소 건물 특유의 아치형 형태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지난해 11월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신축하면 뒤로 물러나야 하고 그만큼 공간이 좁아지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아치형 건물형태를 살리고 싶었다. 신축하는 것보다 리모델링은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5천만 원을 예상했지만 두 배 정도 소요됐다. 김 씨는 "차라리 허물고 신축했다면 돈이 덜 들었을 것"이라고 웃었다.
설계는 부부가 직접 했다. 건물 전체 이미지는 피라미드형으로 성(城)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작은 건물을 크게 보이기 위해 도로의 굴곡에 맞춰 벽면을 확장시켰다. 갤러리 입구에 위치한 백색 벽면에는 황동으로 단조하고 용접한 나무 작품을 만들었다. 건물에 많이 들어간 철의 차가운 느낌을 없애기 위한 의도였다. 또 벽에 푸른색 조명을 달아 나뭇잎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문도 크게 만들었다.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이 성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갤러리의 공간은 작은 편이다. 외부에는 전시공간, 내부에는 작업실 겸 매장이 마련돼 있다. 예전 무기고였던 곳은 화장실로 바뀌었고 숙직실이었던 곳은 매장으로 변했다. 창고는 디자인 및 작업실로 바뀌었다. 공간이 작은 만큼 공간활용에 신경썼다. 앞 공간은 시민들과 작가가 호흡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만들었고 뒷 공간은 디자인과 작업실을 배치시켰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사소한 다툼도 있었다. 벽 부분은 아내가 맡았고 피라미드 형태는 남편이 맡았다. 건물 유리의 견적비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김 씨는 "아내한테 괜히 피라미드형태로 설계해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핀잔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된 날,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정말 잘했어. 돈은 예상보다 많이 들어갔지만 정말 멋지다."고 소리쳤다. 동네 주민들도 좋아한다. 파출소가 1년 동안 비어 흉물로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동네에 멋진 갤러리가 생겼다면서 칭찬 일색이다.
정 씨는 "갤러리가 너무 멋지다면서 비싸지 않을까 들어오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갤러리와 작업공간, 매장이 함께 있는 곳은 대구에서 드문 일이다. 부부는 파출소에서 갤러리로 변신한 이 공간을 작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키울 작정이다.
"전시회 겸 판매전 중심으로 갤러리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작가가 살아야 갤러리도 살고 작품도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김상원)
"요즘 미술품 경매가 인기를 얻으면서 회화는 뜨고 있지만 공예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예작가들도 회화작가 못지 않게 힘들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공예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알려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정해인)
▶폐교서 미술관으로
학생수 감소로 문을 닫은 폐교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민간이나 자치단체에 매각·임대돼 미술관 등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적막했던 마을에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1999년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분교 부지(7천 평)를 매입해 6천여 평 잔디로 새 단장한 시안미술관은 2004년 4월 복합문화예술공간 시안아트센터로 개관해 같은 해 12월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며 시안미술관이 됐다. 변숙희 관장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만든 공간으로 영천시민은 물론 대구시민들에게 나들이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변 관장은 "신축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폐교를 매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장기간의 개·보수 기간을 거쳐 야외조각장과 함께 고풍스런 유럽식 현대 건축물로 조성됐다. 자연을 그대로 담은 시안미술관은 2005년 한국여행작가협회로부터 '폐교를 활용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됐고 TV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등 영천의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탁 트인 넓은 잔디밭이 가족나들이 장소로 좋고 주변 10여 그루의 고목도 미술관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시안미술관은 지속적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외진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그러모으기 위해 휴게공간을 만든 것을 비롯해 최근 교육관을 짓고 있다. 변 관장은 "앞으로 우수한 지역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만들어줄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변 관장은 "지역에서는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지역에서 폐교가 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가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 폐지 파출소 빌라로 변신
대구경찰청은 지난해 폐지된 대구시내 파출소 6곳을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시스템인 온비드에 매각공고해 4곳을 매각하고 2곳은 유찰됐다. 매각된 파출소는 갤러리와 상가건물, 빌라 등으로 바뀌었고 유찰된 2곳은 무료급식소와 순찰대로 이용되고 있다.
폐교의 재활용은 '폐교종합관리지침'에 따라 추진된다. 재산 가치가 2억 5천만 원 이상인 폐교를 매각할 때는 시·도 교육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고 그 이하는 시·군교육청의 결정만 있으면 된다. 매각·임대 모두 경쟁입찰을 해야 하며, 2차례 유찰시에는 수의계약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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