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짖는 즐거운 상상/서기흔 지음/아이앤드아이 펴냄
'개'는 인간의 보조자를 넘어 보호자 역할까지 한다. 인간이 개에게 들이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는 인간과 더불어 같은 공간에서 밥 먹고 같은 곳에서 잠자는, 확고한 가족 구성원으로까지 진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을 가장 충직하게 섬기면서도 인간으로부터 갖은 홀대를 당하는 동물이기도하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사람들 입에 발린 개를 빗댄 상투적인 욕, '개새끼' '개자식' '개뼈다귀 같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이처럼 개에 관한 인간들의 잣대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오후 4시 날씨가 수상하던 때다.'그림 끊는 일'을 폼 나게 궁리하던 중, 수일 전 배달된 책 생각을 했다. 뜯지도 않은 소포. 이런! 내용물이 뭔지 궁금해야 될 까닭도 잊고 있었다. 의자에 앉았다. 안락한 사유의 바운더리다. 책 포장을 풀었다. '비주얼 시대에 비주얼이 커'진 책이다. '개'에 관한 담론. 음, 개라고··· . '세상을 향해 짖는 즐거운 상상'(2005년)을 시작한다.
"개들은 짖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졸거나, 배회하거나 했다. 하지만 어떤 개도 거짓말을 하거나 편을 지어 패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제목 활자 사이에 쥐똥처럼 작게 들러붙은 표지 글이다. 사전 같은 두께의 책이다. 600쪽이 넘는다. 명조체를 변형시킨 타이포그래피가 위에서 아래로 무작위로 박혀 있고, 오른쪽 아래 암수 두 마리 개가 숨 가쁘게 흘레붙는 먹그림이 있다. 'DOG-GOD'이라는 영문도 눈에띈다. 표지를 보면 '개 같은' 내용의 혐의를 짙게 받는다.
두 장의 간지 뒤에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라고 또박또박 인쇄되어 있으며 뒤쪽으로 파격적인 편집이 돋보인다. 특히 개의 형상을 의인화하거나 상징, 또는 사실적인 그림을 보는 눈은 즐겁다.
일테면,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연결해 준다. 인간과 개의 관계 항이거나 일종의 보고서다. 개에 관한 문화사적 담론이라고 해도 무관하다. 김열규, 진중권, 박민규, 이문재 등의 논객들이 개를 해석하는 신통한 재미가 있다. 책의 대부분은 단색 드로잉과 낱말, 짤막한 문장들로 자간과 행간이 느슨하다. 하지만 주의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책을 덮고 나면 곧 칼날처럼 작금을 풍자하는 철학이 몰려온다. 그래서 '개에 관한'한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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