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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버자이너 문화사

버자이너 문화사/옐토 드렌스 지음/김명남 옮김/동아시아 펴냄

1920년대 미국의 한 전도사는 설교를 하기 전에 여성들에게 다리를 꼬아달라고 부탁했다. 치마를 수습하며 다리를 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지옥의 문이 닫혔으니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여성의 성기는 늘 금기의 대상이었다. 지칭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아래쪽' '거기' '음부' 등 비유적인 명칭이 사용됐다.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버자이너'(vagina)도 우리에게 낯선 외래어다. 화장실에 쓰인 'O지'라는 우리의 지칭어는 여전히 어둠 속의 단어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어두운 대륙'이라 불렀고, '판도라의 상자'도 인류최초의 여성 판도라의 '질'이란 부정적인 의미다.

네덜란드 성과학자인 지은이는 부정과 금기,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성기와 성적 욕망을 과학적이고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질은 메두사의 머리와 비슷하다. 뱀들을 보고 여성의 음모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월경하는 여성의 음모가 뱀으로 변한다는 속설도 있다.

전쟁 중 병사들은 적국의 여인들에게 거세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위장된 형태의 두려움이다. 2차 대전에서 독일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독일 창녀들의 질 안에 면도칼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베트남 전쟁에서도 똑같은 소문이 있었다. 여러 문화권에서 등장하는 '이빨 달린 질'의 신화가 현대까지 유효한 케이스다.

성차별의 기원에는 유대인이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유대인 학자들이 지난 2천 년간 여성성을 둘러싼 각종 금기들을 설파하느라 무수한 말을 쏟아냈다."고 말한다. 유대교는 남성의 할례 피는 성스럽다고 생각한 반면 여성의 월경혈은 끔찍하다고 여겼다.

이 책은 그동안 신비의 베일에 가려졌던 여성 성기에 대한 온갖 지식을 모아놓은 '여성 성기 백과사전'이다. 정조대가 있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클리토리스 절제나 음부 봉쇄, 처녀성 검사 같은 세계 곳곳의 기괴하다고 할 수 있는 문화적 풍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성교에 대한 프로이트 이론을 살피고, 오르가슴, G스팟, 질경련, 성교 통증 등 성문제에 대한 최신 의학상식까지도 간추려 설명하고 있다.

이외 성기와 관련된 갖가지 일화도 흥미롭다. 여성의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 성기 마사지가 행해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 자위기구인 바이브레이터가 그 전통에서 탄생했다. 또 '해리 포터' 마케팅 열풍을 타고 만들어진 장난감 빗자루가 진동 기능이 있어 아이들이 '탈진할 때까지' 가지고 놀아 부모들의 불평을 샀다는 놀라운 일화도 가득하다.

이 책의 원제는 '세상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이다. 음모로 뒤덮인 여인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대담한 그림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여성 성기에 대한 베일을 벗기고, 인류의 근원인 질을 진실된 눈으로 보자는 지은이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든 제목이고, 그런 문화인류학적인 고찰은 책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488쪽. 2만 2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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