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찬란한 염색 기술이 꽃핀 국가였다. 신라 왕실은 붉은색 천이 낭비를 부른다 해서 일반인들의 붉은 천 사용을 금지할 정도였으니, 천연염색 기술은 최고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천 년 전의 신라 천연염색을 되살리고자 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박순라(43·경주 성동동) 씨는 결혼과 동시에 천연염색과 인연을 맺었다. "시부모님은 물론 남편도 하루 2, 3시간만 자고 늘 염색만 했어요. 처음엔 그게 얼마나 싫었던지, 도망쳤던 적도 있었죠."
시어머니 박정희(68) 씨와 남편 신용호(48) 씨가 신라인이 쪽물을 들였다던 '쪽샘마을'에서 천연염색을 한지 40여 년, 박 씨는 그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현대적으로 디자인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는 시어머니의 비법을 물려받아 특허출원과 실용신안을 받았고 '신라염궁'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신라염궁은 신라 왕실의 복식을 주관하는 부서. 신라의 복식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신라염궁은 특히 검은색과 붉은색을 내는 데에 탁월하다. 이는 천연염색으로는 내기 힘든 색으로, 홍화를 사용한 붉은색에는 짙은 먹홍색부터 맑고 밝은 다홍색까지, 채도를 다양하게 뽑아낸다. '가장 어렵다.'는 검정은 수백 년 된 재실이나 절에서 재료를 구한다. 오래된 건물 속 그을음을 정제해 원료로 사용하는 이 방법은 아무도 모르는 박 씨네 집안만의 비밀.
"천연염색이 의외로 색이 곱고 다양해요. 대중화된 감물, 황토, 치자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쓰였던 곤룡포, 홍포, 황포의 색, 선비들의 인품이 풍기는 자색, 비색 등도 모두 천연염색의 영역입니다."
박 씨는 경주시와 손잡고 신라의 천연염색을 재현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유일하게 전통방식으로 명주를 생산해내는 양북 두산리 전통마을과 계약을 체결, 생산된 모든 명주를 구입해 천연염색 후 상품화할 예정. 두산 명주마을에 세워진 명주 전시관 옆에 염색전시관을 건립, 관광객들에게 천연염색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 인근 3천 평 재배단지에 쪽, 홍화, 차조기, 꼭두서니 등과 같은 염색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있고 대학생인 딸 신소연 씨도 가업을 잇기 위해 뛰어들었다.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신라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천연염색에 신라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경주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신라의 비단, 세상에 없는 비단을 만들고 싶은게 제 꿈이에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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