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사육신'의 꿈은 '프라우다'?

구소련 공산당의 대표적인 정권 홍보 신문매체로 프라우다(pravda)와 이스베챠(isvestia) 紙(지)가 있었다. 프라우다는 러시아말로는 '진실'이란 뜻이고 이스베챠는 '뉴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당시 서방세계에서는 이런 풍자가 나돌았다. '프라우다에는 이스베챠가 없고 이스베차에는 프라우다가 없다.' 풀어쓰면 '프라우다 신문에는 뉴스다운 뉴스가 없고 이스베챠 신문에는 진실이 없다'는 뜻이 된다. 획일적 정보 통제와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쓰는 신문만 싸고돌려는 권력의 속성을 비판한 말이다.

집권 말기에 그것도 긴박한 民生(민생) 문제도 아니고 국가 위기나 안보 사안도 아닌 기자실 통폐합 따위의 시빗거리를 만들어내 사생결단 대드는 노 정권의 심사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프라우다나 이스베챠 같은 독재정권 型(형) 신문을 기대하자는 건지 사슴을 가리키며 말(馬)이라고 같이 우겨주기를 바라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언론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든 무지한 권력자가 등장하거나 폭군 시대일수록 언론은 더 위협받고 공격 받아왔다.

王朝(왕조) 초기 5천 599건의 言官(언관)들의 諫諍(간쟁) 등 언론활동만 봐도 태조(이성계) 때 월 평균 3.2건, 왕자의 난을 일으킨 太宗(태종) 때 4.2건, 계유정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世祖(세조) 때는 2.7건으로 가장 直言(직언)이 위축돼 있다.

반면 세종, 문종, 단종, 성종 때는 4.8건에서 13.8건으로 활발하게 言路(언로)가 열려있음을 알 수 있다.(참고자료:조선초기 언관언론 연구) 바른말하는 언관 수십 명을 귀양 보내고 하옥시킨 조선조 최대 언론 被禍(피화)사건을 자행한 태조도 옛 고려 왕족을 완전 숙청시킬 때까지는 王(왕)씨 일족을 비판한 언관에 대해서는 문책조차 하지 않았다. 되레 '언론이 이러하니 하는 수없이 왕씨들을 숙청하노라'는 식으로 언론을 이용해 먹었다.

최근 통일부가 '필요할 때는 기자실 써먹고 불리하면(제편 안 들고 비판하면) 없앤다'고 쓴 신문의 기자 출입을 막은 일과 일맥상통한다. 언론인을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는…'부류로 깎아내린 노 대통령의 독설 또한 언관들의 바른 말을 '遊手輩(유수배:빈손 놀리며 노는 무리들)의 妄言(망언:헛소리)이요 妄說(망설)'이라고 깎아내렸던 세조의 비틀린 언론觀(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主君(주군)의 언론관이 그처럼 냉소적이고 우호적이지 못하니 나이 어린 홍보책임자까지 "나는 死六臣(사육신)"이라며 오만해진다. 사육신이 言論(언론)을 위해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자아도취다.

成三問(성삼문) 李塏(이개) 등 사육신은 臺諫職(대간직)에 있으면서 세조 일파가 계유정란으로 권력을 잡은 뒤 內侍(내시)에게까지 君(군)으로 封(봉)하는 끼리끼리 나눠먹는 코드인사를 간쟁했다가 좌천되고 끝내 그 언관정신이 사육신 사건으로 이어져 순절했다.

그분들이 오늘 되살아나신다면 위법적 언론 정책을 밀어붙여 언로를 좁히는 짓이나 오기에 찬 주군에게 올바른 언론관을 직언으로 충고해주지 않고 안색봐가며 알아서 구박 주는 걸 충절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以夷制夷(이이제이)라 했던가.

언론출신을 불러다 언론을 치게 만드는 권력 속에 들어가 주군의 입맛에 맞춰 옛 동지를 치고 나라망신시키는 후진적인 언론정책이나 내놓고 감히 '사육신' 운운해가며 충성을 서약하는 同類(동류) 언론 출신이 낯부끄럽고 딱해 보이기만 한다.

이 땅의 언론들을 무릎 꿇리고 프라우다나 이스베챠로 만드는 전쟁을 하기엔 남은 권력이 노루꼬리만큼 짧다. 그런 헛꿈 대신 세계를 향해 더 큰 꿈과 승부거리를 찾아내 싸워라.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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