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존여비 관념이 뿌리깊었던 옛중국에서 부모들은 제사에 향불을 피울 아들만 애지중지했다. 딸에게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아 기껏 兒名(아명)이나 심지어 경멸적인 어조의 '야터우(계집애)' 등으로 불렀다. 혼인한 여자들은 흔히 남편 성만 붙여 '~부인', 노인이 되면 그저 '할머니'로 불리는 식이었다.
그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50년부터 시행된 '婚姻法(혼인법)'은 처음으로 '쌍방간 家名(가명) 사용권'을 명시했다. 이어 1980년의 개정 혼인법도 '부부 쌍방은 각각 자기의 성명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했다. 더구나 개정 혼인법은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는 조항을 신설,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관념에 일대 파란을 불러왔다.
물론 대다수 중국 가정에서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혼 급증 등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자녀가 부부 일방이 아닌 쌍방의 자녀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경우에 따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끔 법적 장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들은 혼인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교의 본산인 중국보다 더 가부장적 분위기가 드셌던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실질적 지위란 우리가 익히 체감하는 바이다.
이런 우리네 가족 개념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2005년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2년 만에 도입,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가족관계등록부'는 '1人(인) 1籍(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호주와 본적은 모두 사라지며, 父性主義(부성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혼인신고시 부부가 합의에 따라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 하며, 재혼가정 자녀의 성 변경도 가능하게 됐다. 양성평등 가족관계 재정립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철옹성같던 전통적 가족관념에 일대 혁명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누구네 자손' 등 전통적 가족개념도 급속도로 해체될 전망이다.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부'시행은 우리로 하여금 크고 작은 충격과 마찰을 겪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익숙함과 낯섦의 불협화음 속에서 최대한 혼란과 갈등을 줄여가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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